‘양극화’ 치닫는 세계 정치 지형

온두라스, 정치스펙트럼 초월 카스트로 지지

칠레 대선, 중도주의 환멸...좌·우파 전면 대결

불가리아, 反부패 지지자 라데프 대통령 연임

프랑스, 이슬람혐오 표방 극우 ‘뉴페이스’ 등장

팬데믹 대응 불만·불신 정치 분열로 이어져

브라질의 역대 최대 부패 수사인 ‘세차 작전’을 이끌었던 세르히오 모루 전 판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대선 유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AFP]
브라질의 역대 최대 부패 수사인 ‘세차 작전’을 이끌었던 세르히오 모루 전 판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대선 유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AFP]
반부패 캠페인과 시위를 주도해온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 [로이터]
반부패 캠페인과 시위를 주도해온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 [로이터]
니카라과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니엘 오르테가(오른쪽)과 그의 부인이자 부통령 로사리오 무리요. [AFP]
니카라과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니엘 오르테가(오른쪽)과 그의 부인이자 부통령 로사리오 무리요. [AFP]
극우 성향의 프랑스 대선후보 에리크 제무르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LEC 컨퍼런스 센터에 도착해 지지자의 환호를 받고 있다. [AFP]
극우 성향의 프랑스 대선후보 에리크 제무르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LEC 컨퍼런스 센터에 도착해 지지자의 환호를 받고 있다. [AFP]
진보당 소속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대통령 후보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유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진보당 소속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대통령 후보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유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 후보의 지지자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그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로이터]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 후보의 지지자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그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로이터]

세계 경제와 사회, 그리고 정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 발병을 기점으로 더욱 양극화됐다. 특히 정부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에 불만과 불신이 쌓여 정치적으로 분열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정치적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진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 지형은 팬데믹 시대에도 총선과 대선을 치른 국가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대선이 실시되거나 실시될 예정인 국가에서는 중도 좌·우파로 불리는 온건한 후보보다는 개혁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화끈한’ 정치인이 대중의 인기를 더욱 끄는 것이다.

세바스찬 융쿤츠 독일 밤베르크대학 정치사회학 교수는 학술지 사이트 ‘프런티어스 인 폴리티컬 사이언스’에 “이념적 양극화가 아닌 정서적인 부분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발생한 것”이라며 “경제·사회적 위기 상황일수록 수습 방안을 놓고 논쟁이 생겨 정서적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변화·개혁 향한 갈망 꿈꾸는 남미=올해 중남미 국가 10개가 선거를 치렀다. 이 중 5개국은 대선을 시행했거나 시행할 예정이다.

중남미 국가의 대선 후보 대부분은 양극단의 성향을 띤다. 오는 28일 대선을 치르는 온두라스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시오마라 카스트로 후보는 온두라스의 대표적인 진보당인 ‘리브레(자유)’ 소속이다.

반부패 운동을 지지하는 그는 온두라스 국민이 시달리는 마약범죄에서 자유롭길 바란다.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의 동생이 마약밀매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온두라스 국민은 사회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목할 만한 점은 카스트로가 정치적 스펙트럼을 초월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묘사하는 피켓이 곳곳에 등장했지만, 여론은 카스트로의 당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온두라스 시민은 이미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겪고 있어 이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적이어서 ‘남미의 핀란드’로 불리던 칠레 또한 좌·우파가 전면적으로 대결을 펼치고 있어 정치적 양극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1일 칠레에서는 대선 1차 투표가 실시됐다. 2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극우 성향의 포퓰리스트로 알려진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였다. 2위는 자유시장에 반대하는 좌파 인사 가브리엘 보리치다.

카스트는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을 지지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런 그를 두고 ‘민족주의자’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그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칠레의 변화를 열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주의 지도자 아래 안정과 번영을 누려오던 칠레는 최근 몇 년간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졌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에 따르면 1989년 이후 칠레를 집권해온 중도 좌·우파에 국민이 환멸을 느껴 정치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범죄, 불법 이민, 그리고 불안정한 정세에 지친 칠레 시민은 올해 새 헌법 도입을 목적으로 의회를 선출하기도 했다. 이는 카스트가 그리는 칠레의 미래와 부합한다.

카스트는 1차 투표 실시 후 “결선 투표는 ‘자유와 공산주의’ 사이의 선택”이라며 칠레의 정치 양극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남미의 트럼프 대통령’으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이끄는 브라질도 개혁에 목마르다. 지난달 브라질 시민은 보우소나루의 코로나19 부실 대응에 맞서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이에 그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브라질 국민은 정치적 양극화에 지친 상태다. 브라질 ‘좌파 아이콘’인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이 보우소나루의 대체재로 언급되지만, 심각한 경기 침체를 가져왔기 때문에 인지도가 없다.

이에 따라 내년 실시되는 브라질 대선에서는 중도주의자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브라질의 역대 최대 부패 수사인 ‘세차 작전’을 이끌었던 세르히오 모루 전 판사는 지난 2일 중도우파 정당 포데무스에 입당해 ‘제3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에 패배해 개혁의 꿈이 산산조각 난 국가도 있다. 바로 지난 7일 대선을 치른 니카라과다.

니카라과는 중남미의 대표적인 ‘독재자’로 불리는 다니엘 오르테가에 다시 한번 권력을 내어주며 그의 4연임을 허락했다. 야당 인사와 언론인, 정치 비평가 등을 가감없이 수감한 그의 당선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셌다.

미주인권위원회(IACHA)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와 시민단체 결성의 자유를 모두 억압하는 오르테가의 집권 이후 10만명 넘는 니카라과 시민이 국가를 떠났다.

▶ ‘판 바뀐’ 불가리아 정치...프랑스도 극우 ‘뉴페이스’ 등장=지난 21일 불가리아에서 치러진 대선투표에서는 반부패 캠페인과 시위를 주도해온 루멘 라데프 대통령이 5년 연임에 성공했다. 그가 내세운 ‘부패·약탈·무법 척결’이 불가리아 시민의 마음을 ‘저격’한 것이다. 실제로 불가리아의 부패인식지수(CPI)는 2020년 기준 69위로, 자메이카·튀니지·헝가리 등과 공동순위로 올랐다.

불가리아에서는 지난해 10개 이상 도시에서 대규모 반부패 시위가 이어질 정도로 부패에 대한 저항이 컸다. 시민은 중도 우파 정당 유럽발전시민당(GERB) 소속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가 과두제 정치를 펼친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 여파로 결국 GERB는 올해 들어 네 번째로 시행된 총선 투표에서 원내 1당이 되지 못했다. 지난 9월 창당한 반(反)부패 연합 정당인 ‘우리는 변화를 계속한다(PP)’가 득표율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실시된 45대 총선에서 1위를 했던 GERB의 인지도가 낮아진 것이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도 지형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극우 성향의 에리크 제무르와 마린 르 펜이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도층의 지지를 받던 마크롱의 입지가 약화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리크 제무르는 프랑스 정계의 ‘뉴페이스’다. 극우 성향을 띠는 그는 프랑스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역사가 외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무르는 원인을 이슬람주의에 돌린다. 프랑스 내 무슬림 인구가 프랑스의 ‘고유성’을 해친다며 이슬람 혐오주의를 표방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치안과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슬람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 제무르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 방송 C뉴스에 출연해 “무슬림은 도둑이자 살인마, 성범죄자다”라며 “그들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유죄판결까지 받은 그는 놀랍게도 프랑스 내 탄탄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지방선거에는 ’제무르 대통령‘이라 적힌 전단지가 전국적으로 붙었고, 제무르 지지층은 자신들을 ’제무르 세대라 자칭한다.

제무르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 중이다. 해리스 인터랙티브에 따르면 11월 10일 제무르의 지지율은 18%였다. 반면 마크롱은 23%였다. 가디언은 제무르가 내년 4월 14.9%의 득표율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토마스 캐러더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수석 연구자는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모든 제도와 기관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사법부와 입법부의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고, 대통령은 국가 전체가 아닌 자신의 지지만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혜정 기자


yooh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