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수천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 자들. 이들의 편의를 봐주고 방패막이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50억 클럽’ 명단에 오른 저명인사들. 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도록 사업설계를 하고 편의를 봐준 공직자들.... 연일 쏟아지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기사를 접할 때마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저절로 욕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욕만 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 화가 쌓인다. 어떤 자가 나쁜 짓을 하다가 발각이 되면 이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시민은 화가 풀린다. 이것이 곧 정의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는 화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화가 쌓이고 있다. 원인 제공 당사자는 검찰이다. 시민의 화를 풀리게 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받은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가 불길했다. 검찰은 대장동 관련 의혹이 보도된 직후 핵심 피의자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그가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던져 찾지 못했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 인멸 고발 사건을 접수한 당일 바로 휴대전화를 찾았다. 검찰이 핵심 증거물인 휴대전화조차도 확보할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서막에 불과했다. 과거 검찰은 정치인이 개입된 권력형 비리 수사나 대기업 관련 수사와 같은 특수수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 현장을 우선해서 압수수색해 압수물 분석과 계좌 추적을 한 후 관련자들을 참고인 조사한 다음에 핵심 피의자들을 한 명씩 소환해 구속했다. 핵심 피의자들은 대부분 부인하므로 그들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히 증거물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장동 관련 수사는 그렇지가 않다. 대장동 개발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주체는 성남시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사 개시와 동시에 압수수색 대상이 됐어야만 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시작한 지 28일 만에야 성남시청 시장실과 비서실을 압수수색했다. 당연히 늦장 수사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또한 핵심 피의자인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법원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큰 반면에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했다.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쓴소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천하동인 4호 보유자인 남욱 변호사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입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체포하더니 구속영장 청구도 못 하고 체포시한 직전에 석방했다.
혹자는 검찰은 원래 권력형 비위 수사에 취약하다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 현 정권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한 공수처라도 나서야 하는데, 공수처는 대장동 개발 의혹에 대해서 처음부터 관심도 없다. 오히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하면서 손준성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마자 3일 후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는 등 공수처 자체가 위기에 빠졌다.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관련 수사팀의 스텝이 꼬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수사 의지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무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은 지금과 같은 검찰수사를 믿지 못한다. 현 수사팀은 외관상이라도 철저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검찰총장은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 2019년 꾸려진 김학의 전 차관 관련 특별수사단과 같은 형식으로 검사장을 단장으로 하여 현 수사팀 검사와 특수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들로 특별수사단을 꾸려야 한다. 박 장관과 김 총장은 국민의 화가 심각하게 쌓여만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pooh@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