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아래, '탈의무'현상 주목
방역조치· 시민저항 정치철학 관점 해석
국가역할, 국민행복 책임지는 ‘돌봄·대비’
현대인들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
세금 잘내고 법 잘지키면 국민의무 착각
공동체 참여 봉사는 ‘소중한 사회자산’
‘떼쓰고 요구’ 풍조 만연 한국사회에 경종
프랑스 정부가 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시위에도 지난달부터 백신 패스를 도입했다.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에 합헌 결정이 난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공공장소 출입시 백신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반면 영국은 클럽이나 대규모 행사 출입시 백신 여권 도입을 계획했으나 철회했다.
우리 정부도 ‘위드 코로나’를 위해 백신 패스를 꺼내들었으나 “백신접종을 강제하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라며 반발 움직임이 있다.
마스크와 백신 강제는 국민의 의무일까, 국가의 폭력일까?
독일을 대표하는 대중적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신간 ‘의무란 무엇인가’(열린책들)에서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불거진 ‘의무’와 ‘탈의무’ 현상에 주목, 오랜 철학적 물음이지만 잊혀졌다가 새삼 대두된 권리와 의무가 오늘날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성찰한다. 국가의 방역조치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것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강제와 금지는 폭력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국가가 인원수와 거리두기를 일일이 강제하는 게 맞는 건지, 국가가 사생활에 개입할 권리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프레히트는,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인간은 전염병이 돌면 타인과 의학적 운명공동체로 엮일 수 밖에 없다며, 바이러스와의 관계에서 취하는 모든 태도는 더 이상 순수한 개인적 사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개인적 삶의 윤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 생활 윤리의 일부이고, 그런 점에서 곧 의무와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의무감을 부과하는데 따져봐야 할 것은 의무 부과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 어떤 동기에서 나온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국민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거나, 파시즘처럼 특정 인종을 악으로 몰아 죽이도록 강요하는지 아니면 특히 위험에 취약한 시민을 보호하려는지 차이다.
프레히트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국가의 역할과 시민의 의무에 대해 굉장히 모호한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19세기 유물로 치부돼온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시 쓰는 이유다.
프레히트에 따르면, 우선 국가의 역할이 바뀌었다. 전통적인 국가가 복종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현대의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돌봄 및 대비 국가’로 변했다. 누군가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도록 완만하게 조정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 됐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대로 그 경계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 것이다.
누군가가 연금을 받는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지,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지, 개를 학대하는지 등 국가가 관여하는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런 국가가 전통적인 사적 영역으로 넘어온 배경에 생체 정치학을 지목한다. 진화론 이후 이를 사회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국가 단위인 국민 개체군의 위험을 줄이는 게 국가의 역할이 된 것이다. 즉 국가는 전염병을 예방하고 질병을 퇴치함으로써 국민들의 건강을 촉진해야 한다.
삶과 노동, 건강과 관련, 예측 가능한 모든 위험은 국민의 안녕을 해칠 위험 요소로 규정된다. 여기서 국가의 처방, 즉 푸코의 표현에 따르면 생체 권력의 기술은 시민들에게 주의와 대비의 의무를 지우는 데 그 핵심이 있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 아래에서 ‘개체군이 위험에 처하거나 개인들이 서로 위험 요인이 될 때 개입’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국가에 거는 ‘돌봄 및 대비’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신은 최상의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고객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국가가 기대를 저버리면 국가와의 내면적 계약을 파기하고 공동선의 의무를 내팽개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인식의 중심에 자본주의 경제가 있다고 본다. 이기적인 소비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인들은 의무의 범위도 협소하게 받아들인다. 세금만 잘 내고 법을 잘 지키면 된다는 식이다. 의무를 국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치르는 비용 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프레히트는 이는 완전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활발한 시민 참여에 의존하는데, “모든 구성원이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의무는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통제 불능의 혼돈 상태에 빠지고 만다”는 우려다.
여기에 저자는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당연시된 돌봄과 보호, 공동체에 대한 참여와 봉사를 뜻했던 ‘의무’를 소중한 사회자산으로 소환한다. 현재 자발적 시민 참여로 틈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그가 내놓은 대안은 ‘사회적 의무 복무’ 도입이다, 1년은 청년기에, 1년은 은퇴 후에 총 2년간 일주일에 15시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의무 복무를 통해 시민들이 ‘자기 효능감’을 키우고 연대감과 시민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내다본다. 다만 프레히트는 의무복무가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며,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했다.
프레히트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얼굴에 작은 천 조각 하나 걸치는 것에조차 그렇게 분노한다면 앞으로 임박한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강력한 제한과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고 묻는다.
떼쓰고 요구하면 하나라도 더 얻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 한국사회에도 경종이 될 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의무란 무엇인가:마스크 시대의 정치학/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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