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자국 보호주의·환경규제 확산

美·EU 세제혜택으로 자국 제조업 강화

글로벌 ‘탄소장벽’에 제조업 비용부담 커져

제조업 의존도 높은 우리 산업 위기감 고조

제조업 해외이전 가속...일자리 유출 우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파고 속에서 경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국내 제조업이 최근 글로벌 통상 압박에 직면하며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을 지키려는 보호주의가 팽배해진 데다 환경규제의 칼까지 빼들면서 무역장벽을 빠르게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의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팬데믹 이후 새롭게 펼쳐질 환경에서 국내 제조업의 생존 가능성을 두고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6.3%(2017~2019년 평균)에 달해 다른 국가에 비해 제조업 의존도가 높다. 주요 7개 선진국(G7)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일본도 20.8% 수준에 불과하고 독일(19.9%)과 미국(11.2%) 등도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 비중이 큰 만큼 제조업의 위기는 곧 국내 산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매년 실시하는 ‘주요 상품·서비스 시장점유율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기업이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는 제품은 갈수록 줄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2011년 8개에서 2017년 7개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5개(삼성전자의 D램, OLED 패널, 낸드플래시메모리, 초박형TV, 스마트폰)로 뚝 떨어졌다.

팬데믹 이후 강력해진 자국 우선주의는 이처럼 약해진 국내 제조업 생태계를 더욱 거세게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과 EU는 역내 생산 시설을 둔 기업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예고하며 자국 내 생산 기반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대표적이다. 이 협정에 따라 전기차 업체는 면세 혜택을 받으려면 배터리 등 부품의 75% 이상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역내 생산시설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해외로 생산기지 이전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현대차를 비롯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모두 미국으로 눈을 돌려 현지 설비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찬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미국과 유럽의 일방적 통상정책 확산으로 수출기업의 무역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일방적 통상정책은 자국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교역 상대국의 비용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결국 국내 일자리 유출이라는 문제도 야기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의 직간접 일자리 7만2000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전기장비 업종에서 1만5500명 규모가 유출돼 가장 규모가 컸고, 자동차(1만4500명), 식료품(9300명), 반도체(4900명) 등이 그 뒤를 이어 취업유발효과가 큰 업종에서 유난히 유출이 두드러졌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위를 점할 (제조업) 혁신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각 산업별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동맹국과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보호 기조 확산으로 각 나라가 세우고 있는 ‘탄소장벽’도 제조업을 위협하고 있다.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로선 특히나 부담이 크다. 글로벌 컨설팅사 PwC에서 발표한 ‘2020년 탄소중립 경제지수’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에 이어 5위 수준이다.

EU가 지난 달 14일 발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보면 2023년부터 유럽 현지 수입업자가 역외 생산제품을 수입할 경우 해당 제품의 탄소배출량 인증서를 구입해야 한다. 대상 품목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로 인해 우리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EU 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연간 최대 339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결국 한국 기업을 향한 수출단가 인하 압박이나 한국산 제품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도 지난 달 철강, 알루미늄 등이 50% 이상 함유된 제품에 탄소국경조정부담금을 부과하는 ‘공정전환경쟁법’을 발의했다.

설상가상 국내에서도 산업계를 겨냥한 환경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이달 5일 공개한 세 가지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보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각각 2540만t, 1870만t, 0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며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일자리 감소와 우리나라 제품의 국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환경규제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 정책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배터리 등 주요 제조기업들은 ‘탄소장벽’을 넘기 위해 사업 재편과 공정 개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은 환경규제에 따른 비용 상승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기업의 성장과 환경을 동시에 고려해 실현 가능한 정책을 구현할 환경 조성과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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