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거리의 음식은 뜨거워진다
양복입은 샐러리맨도 새침떼기 아가씨도 겨울초입 만난 떡볶이·어묵·순대 등 군침 배고픔 채우고 위로 받고픈 서민들 유혹
[영리포트 기획팀] 도시의 겨울은 노점상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조리열과 운명을 함께 한다. 절기와 관계없이 도시에서 겨울을 알리는 징조는 거리마다 점조직처럼 들어서는 노점상들이다. 거리에서 노점상 불빛이 흐려지는 시점은 목련의 새순이 부풀어 오르고, 산수유 꽃이 산하를 파스텔 톤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는 때다. 겨울보다 먼저 거리를 찾아온 노점상은 겨울보다 조금 늦게 물러가는데 그 흥망성쇠는 체감상 겨울과 일치한다.
눈치 보는 데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점상 먹거리는 일상의 자그마한 위로다. 홀로 식사를 하는 일을 무리와의 단절로 여기며 고단한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홀로 길거리에 서서 붕어빵 머리를 뜯어먹거나 오뎅 국물을 홀짝거리는 일까지 치욕으로 여기진 않으니 말이다. 공중목욕탕에서 발가벗는 것이 당연하듯, 노점상에선 누구도 누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노점상은 홀로 시장기를 속이고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거기에 잔술까지 더해지면 더욱 좋다. 버스 정류장 옆에서 찬바람 속으로 입김을 내뿜는 오뎅 국물의 유혹에 저항할 만한 강심장은 많지 않다.
찬바람 부는 날 저녁 배가 꺼질 무렵이면 노점상 안은 양복 입은 샐러리맨, 새침한 아가씨, 여드름 가득한 학생, 말없는 노인, 칭얼대는 어린아이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로 부산해진다.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같은 먹거리를 먹어대는 모습은 불공정사회에 몇 안 남은 공정사회의 모습 같아 정겹다. 근사한 먹거리를 제쳐두고 그 맛에 쩔쩔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노점상 먹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먹을 양을 정해 놓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먹거리이기도 하다. 얼마나 먹겠다고 정하는 손님도, 얼마나 먹으라고 강요하는 주인도 없다. 손님이 오뎅 한 개비를 먹고 열 번 국물을 따라 먹건 열 개비를 먹고 한 번 국물을 따라 먹건 주인은 느긋하다. 삭막한 도시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인정이다. ‘노변진미’는 가장 만만한 장소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