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민, 조선시대 화가 작업실展

거울 속에 익숙한 여인이 보인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보아왔던 바로 그 여인이다. 바닥에는 치맛자락 그림자가 비친다. 한 발을 뗀 여인이 금방이라도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올 듯 하다. 방안에 놓여있는 화구들이 이 방의 주인이 화사(畵士)임을 짐작케 한다. 이곳은 신윤복의 방이다.

또 다른 방을 들여다보자. 탐스러운 작약꽃 화분이 놓여있는 이 방의 주인은 김홍도다.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 병풍이 펼쳐져 있고 그의 스승이었던 강세황의 책이 보인다. 김홍도가 즐겨 연주했다던 비파, 생황, 거문고도 방안 곳곳에 놓여 있다.

조선시대 화사들의 방을 상상으로 재해석 한 이 그림들은 서양화가 남경민(45)의 작품이다. 주로 서양 대가들의 작업실을 그려오던 작가가 이번에는 김홍도, 신윤복, 겸재 정선 등 조선시대 대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여백없이 꽉 채워진 화면 구성에 그림자도 소실점도 없이 평면적으로 나열돼 있는 사물들의 배치가 조선시대 민화의 화법을 떠올리게 한다. 또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방을 그렸지만, 사실적이기보다 초현실적이다.

예를 들면, 신윤복의 방에서는 두 개의 바깥 풍경이 보이는데 오른편은 조선시대 양반가 연못이 있는 뒤뜰 풍경이, 왼편에는 17세기 서양 바로크 시대의 정원같은 풍경이 내다보인다. 한 화면속에서 동ㆍ서양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

또 김홍도의 방을 다시 들여다보면 화면 정면에 배치된 거울에는 서양식 테이블 위에 유화 붓과 커피포트가 놓여 있는 모습이 비친다. 김홍도의 방 옆에 작가 남경민의 방을 그려 넣은 것. 200여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거장과 교감하고픈 작가의 바램이 공간 속에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방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업을 작가 남경민의 작업실로 가져온 것 같기도 하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창, 문, 거울 등의 오브제가 시ㆍ공간을 뛰어넘어 현실과 초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를 18세기 조선시대 화방으로 이끈 건 겸재 정선의 그림 한 점이었다.

그는 “언젠가 툇마루에서 앉아 작약꽃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선비를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림의 배경에 보이는 선비의 서재가 나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보고, 서양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 나의 핏줄, 나의 선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화에 대한 작가의 학구적인 열정과 대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세밀한 붓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