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봉산이씨 대종가

죽림서원 전경
죽림서원 전경

청정 자연휴양림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는 장성 북이면 방장산 자락에는 세종대왕의 세자 때 스승인 심은 이수(1374~1430) 선생을 배향한 죽림서원이 있다.

세종대왕된 충녕대군 이도(1397~1450)는 혹독하리 만큼 공부를 해, 역대 세자→왕으로 가장 많은 공부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균관대사성 유백순이 생원시 장원급제자 이수를 효령·충녕대군의 사부로 천거했다. 한번의 고사 끝에 응락한 이수는 15~16세의 왕자들에게 대학과 시경, 주역 등을 가르쳤다.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면서 제왕수업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 서연관이 됐다. 세종의 즉위 후에도 그는 경연에 참가했다. 세종이 역대의 사대문적과 주역까지 모두 공부하도록 했다. 세종 8년에 예문관대제학에 올랐어도 스승의 애정어린 충언은 계속됐다고 한다. 세종에게는 정신적 지주 같은 사상가였고, 실천형 정치학자였다.

이도가 11세일때 만나 세자, 임금이 된 이후까지 22년간 제자이자 군왕인 세종대왕을 모셨다.

세종은 문종의 세자 교육도 이수에게 맡겼다. 이수는 이조병조판서를 역임하며 문치와 국방에 힘을 더하다가 세종 12년 돌연 낙마 사고로 사망해 세종묘정에 황희, 최윤덕, 허조 등과 함께 배향됐다. 세종대왕은 이수의 집안에 ‘경인수세(敬仁守世) 충효전가’ 글을 내렸다.

그는 봉산이씨의 중시조인데,황해도 봉산 땅을 하사받으면서 본관으로 삼았고, 그의 장남 이구종(1391~1441)이 사헌부지평 겸 춘추관기주관을 지내다 광산김씨와 결혼한 후 계유정난 때 처가 근처인 평장(현 담양 대전면)에 이주했다.

이구종의 손자인 4세 이증번(1432~1478)이 장성 황룡면 와룡마을로 이거했고, 7세 이사숙(1567~1631)은 1590년 장성 선비들과 함께 이수를 제향하는 죽림사를 건립했으나 정유재란에 소실됐다. 사숙의 아들 관일, 손자 엽, 증손자 석봉이 생원시에 대를 이어 합격했다.

14세 이득원(1765~1842)은 부친 이응열의 유지에 따라 상경해 소실된 이수의 부조묘 중건을 청원 상소했다. 정조는 세종대왕 배향공신 이수에 대한 불천위 제례를 승인해 부조묘를 세우게 했다(일성록). 100여년만에 제사를 올리는 숙원을 이룬 것이다. 이수의 학덕을 기리는 실기 편찬에 발맞춰 장성 유림 71명이 죽림서원 건립을 추진했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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