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 록밴드 ‘씽씽’ 여성보컬로 전 세계가 주목
민요·양악기 조화로 음악장르 새 흐름 이끌어
巫歌에 레게·펑크·댄스·록 결합 ‘추다혜차지스’
대중성 먼 작업…도리어 대중에 ‘센세이션’ 각인
무한한 가능성 발견 중…전통음악 새 이정표로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찾았다. “‘본의 아니게’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새로움을 추구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시초’가 되고, 앞장서는 사람이 됐어요.”
미국 공영방송 라디오 NPR ‘타이니 데스크’에 한국 뮤지션 최초로 출연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민요 록밴드 ‘씽씽’, 무가(巫歌)에 레게·힙합·펑크·댄스·록 등을 결합한 ‘추다혜차지스’. 추다혜(36)는 지난 몇 년 사이 재발견된 전통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무엇’이라고 섣불리 규정하기 어려운 그의 음악세계는 엄연히 ‘추다혜’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추다혜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그를 향한 대중과 평단의 관심도 남다르다. 전에 없던 새로움은 편견을 부쉈다. 올해 95대 1 경쟁률을 뚫고 두산아트센터의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추다혜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일’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었다.
▶소리꾼·배우·음악가… 프로 ‘N잡러’=추다혜는 요즘 ‘트렌드’인 ‘N잡러’다. 소리꾼이자 배우이고, 밴드(추다혜차지스)의 리더다. 그가 지나온 과정에 있었기에 많은 직업을 함께하게 됐다.
민요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삶을 열었으니 이제는 ‘필연’인지도 모른다. 연기자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특기로 삼기 위해 소리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반짝이는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의 이끌림에 대학까지 진학했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도 차마 버리지 못했다. 민요 전공으로 서울예전 국악과를 졸업한 뒤 중앙대 연희예술학부에 다시 입학했다.
음악과 연기를 넘나든 배움은 지금의 추다혜를 이끈 중요한 선택들이었다.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잘하기 위해 노래가 필요하고, 노래를 잘하기 위해 연기가 필요하거든요. 무대에 섰을 때도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 체화돼 나오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민요를 놓았던 추다혜에게 ‘씽씽’ 활동은 변곡점과도 같았다. ‘국악계의 이단아’로 꼽히는 소리꾼 이희문, 현재 이날치밴드를 이끄는 장영규와 만난 씽씽에서 여성 보컬로 활동한 것은 추다혜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기반을 다진 시간이었다. “그때의 민요부터 현재까지가 저의 소리를 찾는 과정에 있어요. 소리를 배울 때의 강박을 벗어나니 내게 잘 맞는 소리를 찾아 좋은 것을 취해 만들어가게 됐어요.”
▶ ‘씽씽’ 그 후… ‘자기만의 길’ 찾아가는 여정=씽씽 활동 이후 추다혜의 길은 더욱 선명해졌다. 씽씽을 통해 민요에 대한 애정이 커졌고, 양악기와의 조화로움을 발견했다. 그 안에서 시도한 새로움은 무가와의 만남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하던 중 ‘무가’를 찾게 됐다. 2016년부터 무가를 공부하기 위해 전국을 발로 뛰었고, 2018년 무대로 올린 ‘상여소리’(콘서트오늘)의 경험이 ‘추다혜차지스’로 이어졌다.
앨범에는 제주부터 평안도·황해도 소리가 모두 담겼다. “굿은 누가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 하는 도제식이 아니라서 제가 원하는 소리로 만드는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선생님들도 10번을 가르쳐주면 10번을 똑같이 하진 않거든요. 날것 그대로를 녹음해 제 소리로 만드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무가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특히나 난관이었다. 제주 무가는 방언이 많아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다혜는 “말 자체에 담긴 의미와 음에 담긴 가사가 예뻐 제주 방언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말했다.
“표준어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것이 많다 보니, 스스로 대중성과 멀다는 생각도 했어요. ‘난 친절하지 못하구나’ 싶었어요. 가사의 의미를 알아야 따라 부를 수 있을 텐데, 떼창은 기대도 못했죠. (웃음) 제 색깔을 잃지 않기 위해 대중성을 포기한 부분이 있어요. 이 작업들이 대중성을 보면서 한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전 제 색깔과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 “아직은 미완성·나를 찾는 과정”=추다혜가 시도한 새로움은 도리어 대중의 귀를 여는 계기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볍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이 새로운 수사를 안겼다. ‘선구자’ ‘센세이션’이라는 말이 그의 이름 앞에 따라온다. “남의 규정 안에 맞추는 것이 더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펼쳐진 상태로 뒀어요. 틀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틀을 만들어가는 것을 더 추구했던 것 같아요.” 선을 긋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든 시도에 대중은 추다혜라는 새로운 세상에 기꺼이 동참했다.
추다혜의 DNA가 풀어내는 창작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제 안에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추다혜가 있다면,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또 다른 추다혜가 있어 그 둘이 상충할 때가 있어요. 하던 것을 해도 채워지지 않을 때, 시키는 것만 하다 진부해질 때 결국 창작하는 추다혜가 이기게 돼요. 누가 떠밀기도 하고요. 전생에 콜럼버스였나 봐요.”
장르의 융·복합을 통한 낯선 시도는 전통음악에 새로운 이정표도 세운다. 추다혜를 통한 전통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 ‘전통’이라는 자양분, 제가 애정을 가지는 도구로 예술을 하고 있어요. 자유로운 예술가이자 한 사람으로 밸런스를 잘 맞추고자 하는 것이 저의 이상이에요. 아직은 미완성이에요. 10년이든 20년이든 저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예술가를 꿈꿔요. 그리고 무엇을 하든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나의 치유, 그들의 치유를 바라보는 작업을 계속 할 것 같아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