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실험작 ‘서부의 아가씨’

코로나19로 연기…1년 4개월 만에 국내 초연

세 주역 카린 바바잔얀, 마르코 베르티, 양준모

 

‘서부의 아가씨’의 여주인공 미니 역을 맡은 소프라노 카라 바바잔얀 [국립오페라단 제공]
‘서부의 아가씨’의 여주인공 미니 역을 맡은 소프라노 카라 바바잔얀 [국립오페라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배경은 19세기 중반. 금광을 찾아 유럽에서 몰려든 이민자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술집은 북적인다. 1930년대 서부영화 전성기가 도래하기 전, 이탈리아의 작곡가 푸치니는 무대로 ‘그 시대’를 가져왔다. 191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초연, ‘골드 러시’ 시대를 통해 이민자들의 애환을 함께 담아낸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다. 푸치니의 걸작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과 달리 ‘서부의 아가씨’는 오페라 전문가와 성악가들에게도 익숙치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푸치니의 ‘토스카’나 ‘라보엠’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쉬운 작품은 아니에요.” 소프라노 카린 바바잔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립오페라단의 국내 초연작 ‘서부의 아가씨’의 여주인공 미니 역을 맡았다. “많은 지휘자와 성악가들이 이 작품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각 역할에 맞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요. 이 자리에 세 명의 완벽한 캐스트가 모였네요. (웃음)” (카린 바바잔얀)

‘서부의 오페라’를 이끄는 세 주역 카린 바바잔얀, 마르코 베르티, 양준모(왼쪽부터)는 이 작품에 대해 “푸치니의 오페라 중에서도 음악적으로 어려운 작품이자 이례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서부의 오페라’를 이끄는 세 주역 카린 바바잔얀, 마르코 베르티, 양준모(왼쪽부터)는 이 작품에 대해 “푸치니의 오페라 중에서도 음악적으로 어려운 작품이자 이례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다음 달 1일 개막을 앞둔 ‘서부의 오페라’를 이끄는 세 주역 카린 바바잔얀, 마르코 베르티, 양준모를 만났다.

‘서부의 아가씨’는 푸치니의 오페라 중에서도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모든 면에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이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이면서도 섬세한 기교와 풍부한 호소력이 따라와야 한다. 관객의 귀에 남는 유명한 아리아는 없지만, 극의 흐름에 따라 음악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여기에 미국 전통음악과 통속민요까지 차용했다. 잭 랜스 역을 맡은 바리톤 양준모는 “푸치니의 작품은 후기 낭만주의, 특히 현대음악에 가까운 박자의 변주가 많은 작품이다”라며 “한 사람이 틀리면 상대 배역이 받아주지 못하기에 모든 상대 배역이 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부의 아가씨’로 여섯 번이나 무대에 오른 테너 마르코 베르티(딕 존슨/라메레즈 역) 조차 “전통적인 오페라가 아니다. 투란도트’는 일주일만 연습해도 소화가 가능하지만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며 “하지만 인상주의 느낌이 강해 음악을 듣자마자 풍경과 상황이 그려지는 영화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서부의 아가씨’에서 딕 존슨 역을 맡은 테너 마르코 베르티 [국립오페라단 제공]
‘서부의 아가씨’에서 딕 존슨 역을 맡은 테너 마르코 베르티 [국립오페라단 제공]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레이션을 이야기할 때도 ‘서부의 아가씨’를 하라고 할 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작품이에요. 배우기도 듣기에도 어렵지만, 듣자마자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릴 만큼 감정이 따라가는 음악이에요.”(마르코 베르티)

‘서부의 아가씨’는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로맨틱 오페라다. ‘폴카’라는 술집을 운영하며 광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미니, 금을 약탈하려다 미니와 사랑에 빠지는 딕 존슨(별칭 라메레즈), 미니를 연모하며 딕 존슨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보안관 잭 랜스의 삼각관계가 극의 흐름을 끌어간다. 바바잔얀은 “푸치니가 악보에 작은 디테일을 적어뒀다”며 “음악과 스토리에 초점을 두고 미니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의 푸치니 작품과는 다른 결말로 나아가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세 사람은 ‘서부의 아가씨’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라고 입을 모았다.

“푸치니의 오페라 답지 않게 해피엔딩이에요. 순수한 사랑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바바잔얀) “딕 존슨은 잭을 제치고 사랑을 쟁취해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아메리칸 토스카’ 같은 느낌이에요.”(베르티)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지켜보는 양준모는 생각이 달랐다. “두 사람에게만 해피엔딩이죠. (웃음) 거칠고 폭력성이 있지만, 자존심 강한 잭을 표현하고 있어요. 미니에게 버림받아 무대를 나가버리는 것도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이에요. 오페라에선 모든 배역이 무대에 끝까지 있거든요.” (양준모)

바리톤 양준모는 ‘서부의 오페라’ 한국 초연에서 잭 랜스 역을 맡아 관객들을 낯선 푸치니의 오페라 속으로 이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바리톤 양준모는 ‘서부의 오페라’ 한국 초연에서 잭 랜스 역을 맡아 관객들을 낯선 푸치니의 오페라 속으로 이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한국 초연인 작품인 만큼 세 사람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도 많다. 베르티는 “하나의 아리아로 튀는 것은 없지만 모든 음악과 전체 그림이 중요한 작품이다”라며 “잭 랜스의 강한 음악, 딕 존슨이 메시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달콤한 노래 등 각각의 캐릭터마다 등장하는 음악들이 관전 포인트다”고 말했다. 양준모는 “초연인 만큼 내가 하는 방식이 다음 사람의 선례가 될 수 있다. 연기의 폭을 줄이고, 음악적으로 디테일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계가 ‘셧다운’된 이후 여러 나라에서 오페라 전막 공연이 올라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부의 아가씨’ 역시 당초 지난해 4월 국내 초연 무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1년 3개월이 미뤄졌다. 바바잔얀은 “오페라 전막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거의 2년 만이다”라며 “한국에 온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모두에게 각별한 무대다. 베르티는 “다시 작품을 시작한 것에 축하파티를 했을 만큼 극장에 서는 것이 저희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고, 양준모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록다운이 됐지만, 한국은 이렇게 무대가 열려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