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3대 연기금 등 대형 자산 운용사들 동참

‘석유 공룡’ 엑손 모빌이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이후 투자자들로부터 기후변화 등 대책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로이터]
‘석유 공룡’ 엑손 모빌이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이후 투자자들로부터 기후변화 등 대책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로이터]

미 대형 석유업체 엑손모빌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 급감으로 40년만에 첫 연간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일부 투자자들이 기후변화 등 시류에 맞춰 기업이 변해야 한다며 경영진과 맞서 주목된다.

대형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등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어 업계 지각변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엑손모빌 시가총액 0.02% 지분 소유 투자자들이 엑손모빌과 석유업계 미래 전망에 대한 이견으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등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엑손모빌 경영진에 대해 투자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생존을 위해서도 엑손모빌이 탄소중립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달걀로 바위치기’로 여겨졌던 이 싸움에 최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참여해 0.02%의 투자자 지지를 선언하고, 미 3대 연기금 등이 가세하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업계 지각변동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매년 엄청난 수익을 냈던 미 석유업계 공룡 엑손모빌은 지금까지 투자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수익이 급격히 악화한 가운데 1월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가 0.02% 지분 투자자들과의 화상회의에 참석해 공방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건 기술주 투자자 크리스 제임스가 지난해 12월 엑손모빌 견제를 위해 출범시킨 ‘엔진넘버원’이라는 활동가 단체였다.

이 단체는 세계 에너지업계가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는데, 엑손모빌은 관련 생존 전략이 없다며 물고 늘어졌다.

‘석유 공룡’ 엑손 모빌이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이후 투자자들로부터 기후변화 등 대책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엑손모빌의 정유공장 전경.[로이터]
‘석유 공룡’ 엑손 모빌이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이후 투자자들로부터 기후변화 등 대책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엑손모빌의 정유공장 전경.[로이터]

‘엔진넘버원’ 출범에 일익을 담당한 헤지펀드사 자나파트너스 임원 출신 찰리 페너는 이 화상회의에서 탄소중립 대책을 요구했고, 우즈 CEO는 이를 거부, 어떤 합의도 없이 논의는 종료됐다.

이후 엔진넘버원의 전략은 엑손모빌 이사진 교체로 수정됐다. 엑손모빌이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을 위해 이사회 개편이 필수적이며,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전문가 4명을 신규 이사에 앉히라고 압박한 것이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쉘, 토탈, 렙솔, 에퀴너 등 글로벌 석유업계 공룡들이 저마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관련 비전을 제시했는데, 유독 엑손모빌만 침묵으로 일관한 점 등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엔진넘버원은 CEO 교체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이번 이사진 교체 여부가 그에 대한 재신임 투표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WSJ는 “10년 전만 해도 시총 면에서 미 최대 석유회사였던 엑손모빌에 일부 투자자들이 도전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변화는 지난해 실적 악화부터 시작됐다고 풀이했다.

국제 석유가스엑스포에 전시된 엑손모빌 부스 전경.[로이터]
국제 석유가스엑스포에 전시된 엑손모빌 부스 전경.[로이터]

지난해 엑손모빌은 224억달러(약 25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이는 이 회사의 40여년만의 첫 연간 적자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엔진넘버원의 요구에 가속이 붙은 건 전날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이들 지지를 선언하면서다. 엑손모빌 대규모 지분 투자자 중 하나인 블랙록은 엔진넘버원이 지명한 이사진 후보군 4명 중 3명을 지지하기로 했다.

또한 미 3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교사퇴직시스템,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시스템, 뉴욕주퇴직펀드 등도 엔진넘버원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