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으로 생긴 청약철회권
공모주 청약증거금 단기대출
철회권 이용해 위약금 없이 상환
2016년 공정위는 철회권에 횟수제한
금소법은 거의 무제한 사용 가능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으로 금융소비자에게 청약철회권이 생겼지만 악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청약철회권을 부여하되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약철회권은 소비자가 금융상품을 계약했다가 일정기간 내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권리다. 가령 대출은 2주 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으며, 원금과 이자, 대출에 따른 부대비용 등을 반환하면 중도상환수수료(원금의 약 1.5%)를 물지 않고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최근 이같은 대출 청약철회권의 악용을 의심할만한 사례가 등장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공모주 청약일(4월28~29일)을 전후로 대출 청약철회권을 사용한 사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에서 대출 청약철회권을 사용한 사례는 4월 일평균 45건, 9억원 가량이었고, 4월30일에도 59건, 9억8000여만원에 그쳤는데, SKIET 공모주 청약환불일인 5월3일에 261건, 89억1000여만원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이튿날에도 99건, 63억3000여만원이나 됐다.
공모주는 증거금 액수에 비례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모에 넣기 위해 자금을 단기로 빌렸다가, 공모가 끝나면 청약철회권을 이용해 중도수수료 없이 대출을 상환한 것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식에서 미수거래와 다름없는 방식을 공모주 청약에 이용한 것이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역대 최대인 25.4조원(전년 동월 대비 8배)이나 늘어난 바 있는데, 상당 부분이 SKIET 청약을 위한 대출로 추정된다.
이전에도 대출 청약철회권이 급전 수요에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는 많았다. 가령 집을 구입한다더라도 하루이틀 차이로 현금흐름이 맞지 않아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는데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업체의 경우 일반 시중은행보다 대출 절차가 간소화돼 있기 때문에, 급한대로 대부업체에서 빌려 썼다가 추후 시중은행에서 저렴한 금리의 대출을 받게 되면 청약철회권을 이용해 갈아타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
문제는 금소법 시행으로 대출 청약철회권을 횟수에 큰 제한없이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대출 청약철회권은 금소법을 통해 법제화되기는 했지만, 사실 이전에도 금융사 약관을 통해 보장되고 있는 권리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6년 금융사 표준약관을 개정해 대출 청약철회권을 도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만 공정위는 청약철회권 남용을 막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1년에 두 번까지만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대출금액도 담보대출은 2억원, 신용대출은 4000만원으로 제한했으며, 개인 차주만 철회권을 쓸 수 있게 했다. 현재도 금융사 약관에는 이같은 내용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금소법은 입법 과정에서 이러한 제한을 없애버렸다. 약관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무제한 가능하게 열어놓은 것이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문제점을 발견하고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통해 한 달에 한 번만 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다만 시행령 상으로도 1년에 열두번은 가능한 상태다.
해당 시행령과 감독규정 조항은 뒤늦게 대책을 땜질하느라 꼼수를 쓴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금소법 20조에는 "금융사는 소비자에게 불공정영업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한 달에 두 번 이상 대출 청약철회를 한 소비자에게는 불공정영업행위(소비자에게 불이익 부과)를 해도 되는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상위법에서 불공정영업행위를 금지하라하고 있고 별도의 단서조항이나 위임조항을 두지 않았는데, 하위규정에서 청약철회권 악용 소비자에게는 불공정영업행위를 하라고 해버린 것이다.
감독규정을 반영해 현재 시중은행 약관에는 "1개월 내에 2회 이상 대출 계약을 철회하는 경우 6개월간 대출이 제한됩니다"라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 이같은 제한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