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적인 것이 과연 있는지에 대해 의심한다.”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오래 천착해온 철학자 탁석산이 신간 ‘한국적인 것은 없다’(열린책들)에서 도발적인 제안을 내놨다.
그는 시대를 초월, 고정불변하게 이어져 온 ‘한국적인 것’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미의식 등은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 왔거나 시대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찾으려는 강박이 우리 문화를 정체시키고 썩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문명교류사적 측면에서 문화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모든 민족의 문화는 역사적 과정에서 뒤섞이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대의 사회 속에서 그때 그때 존재할 뿐,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한국적인 것’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대체로 인류 보편적인 것이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굿으로 대표되는 샤머니즘은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한국의 미’로 특징짓는 ‘무기교의 기교’ 역시 중국 당나라에 등장한 개념이며, 이후 일본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관을 거쳐 우리의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요청된 개념이란 설명이다.
한국만의 독자성을 전통 문화 속에서 찾으려는 궁색한 시도는 ‘왜소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아파트에 대한 시각에서도 드러나는데, 현재 아파트는 한옥의 마당역할을 하는 발코니와 다용도실, 바닥을 데우는 온돌 등 한국형으로 개발했음에도 여전히 아파트는 서양적인 것으로, 한옥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건축으로 분리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서양 것이 우월하다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한국적 DNA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을 적용, 우리 문화를 들여다 보자고 제안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수입한 물소를 교배해 지금의 한우가 되었듯 “어떤 문화든 들어와 백 년 정도 지나면 그 나라 문화라고 해야 한다”는 것.
그의 주장의 핵심은 ‘문화는 무기’이며,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수출이 아니라 수입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연연해 시대를 돌파할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쇠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난학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고, 조선 후기 문을 걸어잠금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망국의 길을 걸은 차이다.
저자는 “우리는 문화 수입에서 결벽증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고유의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국뽕 현상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문화 수입 없이 문화 발전은 없다”며, “전통 문화에서 한가닥 실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기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한국적인 것은 없다/탁석산 지음/열린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