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1271년 몽골인 쿠빌라이칸이 중국에 침략해 세운 새로운 왕조 원제국에서 처음 용이 나타난 것은 1283년 8월 양자강 하류 삼각주 지역의 심장부에 있던 진산이었다. 가뭄이 2년간 계속되던 때였다. 용왕과 그의 아들까지 2마리의 용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 후 많은 비가 쏟아졌다. 원제국이 두번째로 용을 맞이한 것은 9년 후였다. 첫번째와 비슷한 지역이었는데, 이번에도 가뭄 끝이었다. 그러나 먼저와는 결과가 달랐다. 용이 하늘에서 날아오르자 홍수가 발생했고 땅이 잠겼으며 농경지는 황폐해졌다.
용의 출몰은 이후에도 십수차례 이어졌다. 대부분은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홍수가 나 집들이 떼로 쓸려가거나 번갯불이 함께 나타나 나무를 태어거나 거대한 돌덩이를 민가에 떨어뜨렸다. 용의 거듭된 출몰이 이어지는 동안 중국에 세웠던 이민족의 나라는 약 100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원을 뒤엎고 중국 한족의 왕조를 부활시킨 주원장도 용과 함께 역사에 등장했다. 원의 마지막 17년 동안 용의 출현은 더 빈번해졌고 이와 더불어 사방에서 반란 소식이 들려왔다. 주원장도 반란군 중의 하나였다. 주원장은 명을 창건 하기 14년 전 가뭄으로 고통받던 양자강 하류 지역을 정벌하면서 ‘용에게 간구해’ 땅을 평화롭게 적시는 비를 내리게 했다. 용을 다스린 자는 용이었고, 세상의 주인이었으니, 주원장은 새로운 왕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명 때에도 용의 출몰은 이어졌으며, 대개는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하늘로부터의 은총이거나 응징이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이 이렇듯 역사서에 기록된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책임편집자이자 이 시리즈의 원ㆍ명 편인 ‘하버드 중국사 원ㆍ명-곤경에 빠진 제국’의 저자인 티모시 브룩은 원ㆍ명 시기의 중국사에서 무수한 용의 출현 기록을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 그리고 정치적 격동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13세기에서 17세기까지 원에서 3차례, 명에서 6차례 등 총 9번의 ‘늪’이 있었다고 한다. ‘늪’은 심각한 기후 재앙과 그 때문에 발생한 대규모 참사를 저자가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에 착안해 저자는 명과 그 뒤를 이은 청을 한 시대로 묶는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을 버리고 원과 명을 한 시대로 분류했다. 저자는 정사인 ‘원사’와 ‘명사’, 왕실의 일기와 실록, 지방 행정 기구에서 지역의 일을 기록하기 위해 남긴 지방지, 수필가들의 비망록 등을 읽어가면서 기근, 홍수, 가뭄, 태풍, 메뚜기 떼, 전염병 같은 각종 자연재해는 물론 용의 공격 같은 특이사항을 주목하고 시간에 대해 배열한 결과 두 시대가 단일한 시대임을 발견했다. 그 비밀은 원-명 시대가 기후학자들이 ‘소빙하기’와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환경’을 중국의 사회ㆍ역사적 변화의 주요한 변수로 삼음으로써 원ㆍ명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펼쳐간다. 이와 함께 문헌 자료 뿐 아니라 회화, 지도, 비문 등의 시각 자료나 수많은 기록들을 통해 단순한 왕조사나 거시사가 아닌 일반 백성들의 일상사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엮어냈다.
저자 티모시 브룩은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중국사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책임편집자로 참여한 21세기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는 총 6권으로 기획됐으며, 국내에는 ‘청-중국 최후의 제국’에 이어 ‘원ㆍ명-곤경에 빠진 제국’이 두번째로 번역 출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