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업 신속IPO채널 인기

유명인 내세워 자금조달 흥행

美 열풍 亞·유럽 등 세계 확산

美 SEC ‘묻지마 투자’에 경고

[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 17일 가상화폐와 해외주식거래소 플랫폼인 이토로(eToro)가 상장계획을 발표했다. 이트로는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주식거래 사이트 ‘로빈후드’의 라이벌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기업공개 방식이 아니다. 은행권 거물인 베치 코헨이 설립한 FTCV라는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서다. 합병회사 가치는 무려 104억 달러다. 올 스팩 최대어다. 우리나라 증권사 ‘빅3’인 미래에셋·삼성·NH투자증권을 합한 시가총액 보다 크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증시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스팩 광풍은 진원지인 미국 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스타트 업에게는 신속한 상장을 길로, 투자자에게는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로 인지되면서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해외증시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하지만 지나친 과열이 오히려 시장에 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인 모기지 처럼 특정 구조의 금융상품이 지나치게 커지면 반드시 부작용이 드러났던 게 지난 경제위기들의 교훈이다.

스팩은 비상장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인수회사를 말한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비상장사를 물색해 인수·합병(M&A)하는 게 목적이다. IPO로 2년 걸리는 상장 절차가 단 6개월이면 되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비교적 간단하다.

2020년 전까지만 해도 스팩은 주류 시장은 아니었다. 비우량기업의 상장 통로정도로 여겨졌다. 상장 후 시장에서 스팩 상장기업은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사태로 증시 상장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어 유례없는 강세장 속에서 기업들에게 사업 자금 조달의 급행열차가 되면서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합병이 이뤄지지 않으면 출자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고, 합병이 성공하면 주가 상승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얼핏 보면 ‘못해도 본전, 잘하면 대박’인 구조인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서 올들어서만 235개의 스팩이 720억달러의 자금을 모집했다. 3개월만에 지난해 244개 스팩이 모은 780억달러에 육박했다. 올해 IPO에 몰린 투자금 절반이 스팩과의 합병으로 이어진다.

미국 뿐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수퍼리치들이 초저금리 환경에서 더 높은 수익을 내려하면서 스팩에 빠져들었다. 홍콩 최대 갑부인 리카싱의 아들 리처드 리, 중국 최대 사모펀드 호푸 투자관리공사 설립자인 팡펑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스팩들은 합병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아시아, 유럽으로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호출·배달 플랫폼인 ‘그랩’은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뉴욕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이에 호응해 홍콩과 싱가포르, 유럽 증권거래소는 스팩에 문호를 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팩 대상 기업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등 신사업이다.

골드만삭스는 “스팩 투자가 가치에서 성장으로 전환중”이라고 분석했다. 

스팩 열풍이 커질 수록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스팩이 급증하는 만큼 합병대상 기업이 부실해질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특이 유명인의 인기에 편승해 많은 돈을 모은 스팩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유명인이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스팩에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