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사라졌다.’
서울 신림동에서 3년째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모씨(43)는 밤 시간 텅빈 홀을 볼 때마다 이 말을 실감한다. 이씨는 “연말 모임 손님들로 새벽까지 꽉 찼던 작년 홀 풍경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며 “이달 매출이 전년의 10분의 1 수준이고, 확진자 숫자를 볼 때마다 희망이 꺾이지만 폐업하자니 당장 그간의 대출금도 갚아야해 더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골목 곳곳의 숱한 ‘사장님’들은 오늘도 폐업의 기로에 섰다. 23일 0시부터 수도권의 5인 이상 사적모임이 금지되면서 연말 대목이라는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다.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2020년, 대유행 때마다 매출은 출렁거렸고 빚은 늘어갔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이달 둘째주 서울지역 소상공인 사업장 평균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62%까지 떨어졌다. 이미 빚도 늘어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755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25% 증가했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지난해 기준 26.4%로 한자릿수 비중에 그치는 선진국 대비 크게 높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타격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크다. 서울 여의도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홍모(35)씨는 “정부의 방역실패로 인한 피해를 왜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하냐”며 “업종마다 기준도 들쭉날쭉이고 우리가 힘이 없으니 당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벼랑 끝이지만 폐업을 선뜻 결정하기도 어렵다. 폐업 이후 뾰족한 수가 없고, 소상공인 대출 등 그간 적자에도 근근히 버티게 해줬던 대출은 폐업하는 순간 당장 갚아야 할 빚으로 숨통을 조인다.
한푼이 아쉽지만 최근 페업이 늘어나면서 각종 중고물품도 헐값에 팔린다. 소상공인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는 ‘시간도 많은데 차라리 중고사이트에 직접 올리라’는 자조섞인 조언도 등장했다. 울산 지역에서 고철업을 하는 김모(55)씨는 “아는 곳은 인정상 치워주기도 하지만, 사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자영업자는 지난 3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중이다. 특히 지난달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전년대비 11만5000명이 감소하며 24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직원도 내보내고 아예 폐업을 선택하는 이도 늘다보니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즉 혼자하는 자영업자 증가폭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비대면 소비 트렌드 확산 속에 그나마 숨구멍은 ‘배달’이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신규광고 가입 신청문의는 전월 동기 대비 두배 이상(110%) 증가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배달수수료도 부담이지만 업종 특성상 배달 자체가 어려워, 차라리 배달 라이더를 고민하는 사장님들에게는 그마저도 행복한 고민으로 느껴진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씨는 “주변에 벌써 라이더를 시작한 사장님들이 있는데, 내 가게 하다가 남의 집 음식을 배달하는 게 씁쓸하다”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도 있지만, 그 이전부터 노동비용 충격 등으로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안 좋았다는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해결할 문제”라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그러면서 “정부는 소비쿠폰을 뿌리거나, 임대업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보다 자영업자에 직접적 재원 지원과 정책금융의 상환유예 등의 맞춤형 지원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