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LG에 A4 4장 서한
계열분리 반대 주장…재계 “주가 부양 의도”
LG “분사로 전자, 화학, 통신 등에 집중…주주가치 높아질 것”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외국계 헤지펀드의 공세가 또 시작됐다. 다만, 이번엔 무게가 다르다. 상법개정 입법안이 통과된 직후이기 때문이다. 공시 의무를 피해가며 외국계 자본이 연합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소위 헤지펀드의 ‘스텔스 공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6일 재계 및 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헤지펀드 화이트어드바이저스가 LG그룹에 개별 분리를 반대하는 서한을 보낸 건 지난 14일(현지시간)로, A4 페이지 4장 분량에 이른다. 국회에서 상법개정안이 통과(지난 9일)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화이트박스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 구본준 고문이 LG상사나 LG하우시스 등 5개 계열사를 계열 분리하는 데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서한에선 소제목을 통해 “분할이 소액주주나 LG에 손해를 줄 것”, “기업 지배구조에 의문이 제기된다” 등을 강조했다. 이번 분사로 ㈜LG의 보유 현금자산 중 9%가 빠져나간다고 주장하며 소액주주 피해를 부각시켰다.
화이트박스의 공개 공세에도 불구, 당장 LG그룹에 타격을 주긴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LG의 오너일가 지분율은 구광모 LG그룹 회장(15.95%), 구본준 고문(7.72%)를 비롯, 총 46.07%에 이른다. 우호지분 등까지 합치면 경영권 방어엔 충분한 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실제 계열분리 반대를 주장하기보단 자사주 매입이나 특별 배당 등을 요구하거나 주가 부양에 따른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LG 관계자는 “이번 분사로 전자, 화학, 통신 등 다른 사업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주주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며 “분할이 완료되고 성장전략이 보다 구체화되면 디스카운트 이슈가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변수는 상법개정안이다. 재계가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헤지펀드의 목표가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난 계열분리 반대를 넘어 한층 폭넓은 경영 개입으로 비화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상법개정안에 따른 의결권 제한으로 경영 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법 개정안에 따라 구 회장은 15.95%의 지분율에도 불구, 실제 감사위원 선출 시 의결권은 3% 뿐이다. 그 외 친족들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반면, 외국 헤지펀드들은 공시 의무를 피하며 ‘조용히’ 연합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화이트박스의 경우 현재 (주)LG 지분을 약 0.6%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율이 5%를 넘지 않는 한 지분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화이트박스 역시 지분율이 추정치일 뿐 그 뒤로 얼마나 지분을 늘렸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 3%만 보유하면 구 회장과 의결권이 똑같다.
때문에, 공개 의무가 없는 범위 내에서 외국 헤지펀드가 우호세력으로 연합하게 되면 상법개정안에 따른 의결권 제한과 맞물려 표 대결을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위 외국 헤지펀드의 ‘스텔스 공격’이 우려된다는 주장은 상법개정안 논의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며 “화이트박스 사례가 주목되는 이유”라고 전했다.
화이트박스는 55억 달러(약 6조원)을 운용하는 헤지펀드로, 엘리엇매니지먼트 출신 사이먼 왁슬리가 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공세를 펼쳤던 곳이다. 현대차 역시 엘리엇이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고 고배당을 요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경영권에 간섭하면서 최근까지 공방이 지속됐었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헤지펀드 입장에서는 의결권 3% 제한 등으로 무기가 생겼고, 이번에 계열분리 이슈까지 있으니 더욱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