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와 삶에서 대기업이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하루도 빠짐없이 대기업 관련 뉴스는 넘쳐나고 있고, 대기업 제품이나 서비스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끊임없이 시달리지만 청년들은 대기업 문만 두드리고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협력사’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생태계 속에서 생존하고 있거나 그 속에 들어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영향력이 큰 만큼 그에 상응하는 법적·사회적 책임도 따라줘야 한다. 우리 대기업은 다양한 제품에서 세계 1등에 올라서는 쾌거를 일궈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불투명한 지배구조, 편법 승계, 일감 몰아주기 등과 같이 일류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과 행태도 종종 보여주곤 했다. 우리 경제에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심화 같은 구조적 정책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에 공정위는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 구현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대기업집단 시책 개편안을 마련했다.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과 편법적 경제력 집중을 차단하면서도 과잉 규제를 완화해 혁신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설계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율 대상을 확대했다. 상대적으로 내부 거래가 많은 기업들을 법 적용 대상에 추가하고,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추거나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해 규제를 회피하는 사례를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적용 대상이 현행 210개 기업에서 598개 기업으로 늘어나 사각지대가 상당 부분 해소되고 계열사 간 내부 거래가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으로 지주회사가 자회사와 손자회사에 대해 보유해야 할 최저 의무지분율을 현재보다 10%포인트씩 상향했다. 지주회사는 주식 소유를 통해 타 회사를 지배하는 회사로,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한다. 반면 우리의 경우 최저 지분율이 상장사 20%, 비상장사 40%로 돼 있어 지주회사가 적은 지분으로 과도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회사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익법인이 각종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계열사 주식을 출연받아 보유하며 이들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편 기업 부담 최소화를 위해 개정 규정의 규율 범위나 시기를 조정하는 노력도 병행했다.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상향은 신규 지주회사에만 적용할 예정이며,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도 적대적 인수·합병(M&A ) 방어 차원에서 일정 부분 허용하면서, 그 행사 한도를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할 방침이다.

끝으로 이번 개정안에는 규제 강화 내용뿐만 아니라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와 기존 제도를 합리화하는 방안도 균형 있게 포함돼 있다.

벤처지주회사 규제를 대폭 완화했으며, 현행 5조원 또는 10조원이라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도 아예 GDP의 0.5%로 변경해 경제 규모에 따라 지정 기준이 자동으로 연계·조정되도록 했다.

또한 그간 금지해왔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를 다양한 안전장치를 두면서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2017년부터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및 이해관계자 토론회·간담회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 수준에서 마련된 것으로, 상법이나 금융그룹감독법 등 다른 법률과 연계해 공정경제와 혁신 성장을 위한 토대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한다. 향후 국회에서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법 개정이라는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