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정기적으로 상장기업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등급을 공표한다. 최근에도 KCGS는 상장사 908곳을 대상으로 ESG 등급을 평가·발표했다.
발표 자체는 새롭지 않다. 오히려 신선한 건 이후 업계의 반응이다. KCGS 공표 결과 A등급 이상 고평가를 받거나, 혹은 직전 평가 대비 등급이 상승한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성과를 알리기 시작했다. KCGS 내부에서도 변화를 체감한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했던 기업들이 요즘은 등급 발표 시기, 내용 등을 두고 문의가 쇄도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ESG 등급에서 A등급 이상 받은 기업은 전년 대비 50곳 늘어났다. 반길 일이다. 효성, 한화, CJ그룹 등은 전년 대비 올해 ESG 등급 상향 성과가 눈에 띈 그룹사로 이목을 끌었다. 이들 그룹의 약진은 또 다른 기업엔 자극제가 될 것이다.
재계의 관심은 분명 반길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의 ESG는 갈 길이 멀다. 상황도 그리 여유롭지 않다. 투자자보다 한발 앞서 기업은 이미 ESG가 발등의 불이다. 한국전력은 최근 석탄화력발전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선언했고, 삼성물산도 석탄 관련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발표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 주요 연기금이나 국부펀드의 투자를 받을 수 없다. 기업이 투자 유치를 이어가려면 이제 ESG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건이 됐다.
이젠 투자자도 바뀔 때다. 최근 증권사들이 앞다퉈 ESG 보고서를 발간하고, 한국거래소도 ESG 지수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을 정도로 ES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에서 ESG는 낯설기만 하다. ESG 투자가 실제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는 사례가 축적될 필요도 있지만, 그에 앞서 ESG 투자가 왜 중요한지 철학을 공감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SG 투자는 좋은 기업에 투자하고 좋은 기업의 주주가 되겠다는 철학이다. 본래 주주(株主)란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주인’이란 뜻이다.
의류업체 파타고니아는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로 제작하고, 매출의 1%를 자연보호에 쓰는 지구세를 도입한 기업이다. 인간과 환경 모두에 이로운 제품을 만드는 게 기업 철학이며, 이익을 추구하되 성과를 우선시하지 않고, 성장과 확장은 회사의 기반이 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를 그냥 말로만 선언한 게 아니라, 문서화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교육한다. 주주 되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드는 회사다.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픈 회사다. ESG 투자란 이런 것이다. 돈을 얼마나 버는가에 앞서 돈을 어떻게 버는가를 고민해보는 투자다.
파타고니아는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는다. 개인이 주주가 될 기회가 없다는 얘기다.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눈을 넓히면, 제2, 제3의 파타고니아는 곳곳에 있다. 상장사 중에서도 말이다. 지구를 지키고자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기부만 할 필요가 없다. 투자하면 된다. 내 돈의 진짜 가치를 증명해주는 ESG 투자를 통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