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파워서 미국·유럽·일본에 밀리고

중위권 경쟁서 중국 업체들 치고 올라와

휴대폰·가전은 물론 잘나가던 K-뷰티도 위협

中 기술굴기+자국 우선주의…무더기 퇴출기로

지난 1월 미국 CES 2020에서 중국의 TV 제조업체 TCL이 부스에서 선보인 QLED TV. TCL은 중국 쑤저우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LCD패널 생산공장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월 미국 CES 2020에서 중국의 TV 제조업체 TCL이 부스에서 선보인 QLED TV. TCL은 중국 쑤저우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LCD패널 생산공장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20여년 중국 시장에 공들여 온 국내 제조 중소기업들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브랜드 파워에서는 미국과 유럽에 밀리고, 품질과 가격을 앞세워 진입했던 중위 시장은 중국 현지기업들에 뺏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중국에서 K-뷰티 기업의 약진도 옛말이 됐다. 화장품업계에서는 사드 후폭풍으로 K-뷰티 기업들이 중국에서 퇴출되다시피 한 이후 최근까지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2010년대 초반 한국 기업의 발빠른 공략에 밀렸던 일본 기업들이 중국으로 속속 진출하며 미국·유럽에 이은 차상위 시장을 차지했다. K-뷰티 기업들이 다수 포진했던 중위권 시장은 중국 기업들이 치고 올라왔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미디어(iiMedia Research)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브랜드(중복응답)는 유럽 및 미국 브랜드(56.5%), 중국 브랜드(55.6%), 일본 브랜드(47.8%) 순. 한국 브랜드는 4위(37.1%)였다. 유로모니터 조사에서도 중국 화장품 시장점유율은 프랑스의 ‘로레알파리’가 3.6%로 가장 높았고 이어 중국 중저가 브랜드인 ‘바이췌링’이 2.4%로 2위를 차지했다. ‘쯔란탕’(1.9%), ‘칸스’(1.4%) 등 중국 브랜드들도 시장점유율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바이췌링’, ‘이예즈’ 등은 K-뷰티의 미투 브랜드로 시작한 업체들이다. 지금은 한국 브랜드를 제치고,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됐다.

화장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한국 화장품 업체들이 수 년간 중국 시장에서 노력을 기울였지만 고급 브랜드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제 LG생활건강 정도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로레알 같은 유럽 브랜드는 고급이란 인식이 확실하지만 한국 화장품은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 치고 올라왔다. 중국 업체들이 ODM(제조자업 개발·생산) 등을 통해 경쟁력도 높였다”고 전했다.

휴대폰과 가전제품은 중국 기업들이 가성비로 현지는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주로 포진한 소형가전에서 샤오미, 하이얼, TLC, 디베아 등의 중국 기업들이 약진하면서 그만큼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 대만 등 여러 전자기업들의 제조공장을 유치한 중국은 위탁제조 등으로 노하우를 쌓은 후 ‘기술굴기’를 내세워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였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중국산 가전제품 수입액은 지난 2015년 17억8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1억7000만달러까지 늘어났다.

한 주방가전 업체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확보한 품질 대비 가격경쟁력 이상의 수준을 이제 국내 업체들이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며 “대기업은 이 제품이 안되면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는 게 빠르지만 중소기업은 제품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의료기기에서는 오히려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는 상황. 여기에는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 중 바이오의약 분야가 10대 산업 중 하나로 들어가며 시작된 ‘의료굴기’ 정책이 있다. 중국 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컴퓨터단층촬영기기(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감마나이프 등 기술집약 제품도 개발했다.

업계에서는 유나이티드이미징, 마인드레이 등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격차를 벌려 한국이 따라잡기 더 어려워졌다는 탄식이 나온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의 핵심 경쟁력이 가격에서 최근 품질, 디자인까지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중국은 원격의료가 가능하고, IT기업들도 헬스케어와 융합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의료에 대한 접근이 유연해 향후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을 바탕으로 한 의료기기에서도 경쟁력이 두드러질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이와 관련 “중소기업은 넓은 시장을 얇게 공략하면 안 된다. 좁은 시장을 깊게 공략해야 한다”며 “중국도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큼 시장의 기반을 깊게 갖고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수출지원사업(수출 중기에 마케팅, 법률, 시장정보 등 지원) 등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조언했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