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안되는 역사 가진 국내 바이오
완전한 생태계 사이클 경험 못해 한계
적극적인 M&A로 성장한 해외와 달리
부정적 시각 탓에 인수합병에도 소극적
개발 진행중인데 결과 과대포장 홍보
‘벤처 숙명’ 앞세워 투자 유치만 집중
“해외 바이오 기업들은 연구개발에 가장 신경을 쓴다. 회사 구성원도 연구개발 인력이 가장 많고 회사에서 영향력도 가장 크다. 반면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IR이나 홍보에 많은 힘을 쏟는다. 연구개발도 하지만 이보다는 회사의 몸집을 키우는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과 해외 바이오 기업의 차이점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한마디로 국내와 해외 바이오 기업의 차이를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내와 해외 바이오 기업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데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있다. 국내와 해외 바이오 기업의 역사에 따른 규모의 차이도 있고, 바이오 산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다르다. 여기에 각 국가만이 가진 문화 차이도 더해지면서 바이오 산업에서 격차가 벌어졌다는 평가다.
▶짧은 역사의 국내 바이오 산업…“아직 생태계 한 바퀴 경험 못해”=2020년 현재 한국에서 바이오 산업은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몇 해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면서 바이오는 그 중심에 있어 왔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여기에 올 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바이오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바이오는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산업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국내 바이오 산업을 대표하는 기관인 한국바이오협회의 경우 지난 2000년 ‘한국바이오벤처협회’로 출범을 할 만큼 국내 바이오 산업의 역사는 2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짧은 역사로 인해 한국 바이오 산업은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아직 산업으로서 완전함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 바이오 생태계를 완전히 경험한 적이 없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 같은 경우 바이오 산업 시스템이 한 사이클(바퀴)을 다 돌아 완전한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반면 한국은 경험, 인력, 기술 등이 우수함에도 이런 생태계를 완전하게 한 바퀴를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M&A로 성장한 해외 기업들…한국은 따가운 시선에 ‘소극적’=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글로벌 수준의 큰 바이오 기업이 나오지 못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과 같은 큰 기업이 있기는 하지만 이 기업들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이나 바이오시밀러와 같은 장치산업에 기반을 둔 바이오 기업들이다. 신약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큰 곳은 아직 없는 셈이다.
반면 해외 바이오 기업 중에는 작은 벤처로 시작했지만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큰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치료제로 인정받은 렘데시비르를 개발한 길리어드사이언스의 경우 지난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작은 바이오벤처였다. 이후 10여 차례의 인수합병(M&A)을 거치며 몸집을 불려왔고 2018년 매출액 256억달러(30조원)를 기록하며 세계 10대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올라섰다.
또 다른 미국 바이오 기업 암젠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1980년 세 명의 과학자로 시작한 암젠은 오로지 연구개발(R&D)에만 집중 투자하며 설립 40년 만에 전 세계 100개국에 진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암젠의 지난 해 매출은 225억달러(24조4400억원)로 글로벌 순위 9위를 차지했다. 암젠도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혁신적인 신약개발을 바탕으로 기업의 가치를 높인 경우다. 이 밖에 다른 글로벌 상위권 바이오 기업들도 그 동안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연구개발을 통해 몸집을 불리며 업그레이드를 시켜 왔다.
반면 한국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바이오 벤처가 다른 기업에 흡수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좋은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 벤처가 큰 돈을 받고 다른 기업에 흡수되면 그 창업자나 임원들은 돈만 벌고 떠났다며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며 “문화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바이오 벤처가 성공하면 이를 창업자가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옳다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자기가 가진 기술과 아이디어를 좋은 조건으로 세일즈 해 그 자금을 가지고 또 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벤처에 성공해도 그걸 적기에 파는 것이 어렵다”며 “한국 사회에 깔려 있는 반기업 정서 때문인지 벤처 창업가들에게 들이대는 도덕적 잣대가 엄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투자 유치에만 신경쓰는 한국 기업들…“자금 모집은 벤처의 숙명”=이런 반기업 정서가 작용하는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그동안 바이오 기업 중에는 실제보다 기업 가치를 부풀려 주식 시장 등에서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있다.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상황임에도 마치 대단한 결과물이 나온 것마냥 포장해 이를 홍보하면서 투자자를 모은 것이다. 2016년 코스닥에 상장해 주식 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뒤 전·현직 임원들의 부정행위로 현재는 거래정지 상태가 된 신라젠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임상시험 중간에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없고 품목허가가 난 뒤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팔려야 주가에 반영이 된다”며 “국내처럼 임상 단계별로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바이오 벤처들은 투자자 유치에 더욱 신경을 쓴다. 결국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현실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연구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자본이 들어간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010년까지만 해도 직원이 최소 50~100명 정도가 되어야 홍보나 IR 인력을 뽑는 기업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직원이 10명만 넘어도 홍보·IR 업무 담당자를 채용하는 곳이 많아졌다”며 “상장 전 장외시장에서 투자유치를 통해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규모가 커지면 재무나 회계와 같이 기업 경영에 꼭 필요한 곳을 보강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부분을 초창기 때 맡았던 직원이 주먹구구식으로 계속 끌고 가는 경우도 봤다”며 “이런 것 때문에 기업에게는 초보적인 실수에 해당하는 회계 감사 거절이나 관리종목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바이오 벤처 입장에서는 IR과 같은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결국 벤처가 가진 기술력을 현실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이를 유치하는 것은 벤처의 숙명과도 같다”며 “종종 실제 자신이 가진 기술력보다 과도하게 포장하는 기업들이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성향도 이런 것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