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해시태그 중 하나가 ‘#부러진펜운동’이다. 얼마 전 불거진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 항의하는 뜻이 담겨 있다.
부러진 펜 운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공기업을준비하는사람들의모임(공준모)’의 한 회원이 글을 올리며 촉발됐다. 이 회원은 카페 게시 글에서 “인국공(신입사원 모집) TO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운동은 역차별에 항의하는 취지로 취업을 위해 공부하던 필기구를 부러뜨린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취업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카페의 회원은 대부분 취업준비생이다.
과거 펜, 붓 같은 필기구를 꺾거나 이를 선언한 사례를 보면 강경하고 절박한 항의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일제 말기 이른바 청록파(박두진·박목월·조지훈)와 정지용을 비롯한 많은 문인은 ‘친일 문학’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작품을 더 이상 발표하지 않고 낙향했다. 절필했던 문인의 붓이나 펜처럼 취준생에게도 필기구는 삶의 도구다. 작품 발표나 취직은 삶을 영위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과거 6월 항쟁, ‘촛불 집회’ 등을 보면 이런 삶을 버릴 정도의 큰 분노는 강경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약관화하다. 그 분노는 마음속에 갖고 있던 공정이라는 신념이 무너진 데에서 온 것이다.
인국공 사태에 반발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이미 4년 전 촛불 집회 참여 등을 통해 공정의 중요성을 몸으로 역설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정부가 현 정부다. 취임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부 집권 이후 수년간 공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나온 파열음도, 이른바 ‘조국 사태’도 다 공정에 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인국공 사태를 통해 취준생을 비롯한 젊은 층은 부러진 펜 운동을 통해,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결과가 아닌 과정의 공정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무임승차’나 ‘새치기’ 같은 과정의 불공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된 여권과 청와대는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최근 며칠 새 “사소한 일”(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로또 취업’이니 하는 생트집”(김두관 민주당 의원), “가짜 뉴스”(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발언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특히 김 의원은 지난 26일 SNS에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적었다. 자칫 ‘결과의 평등’을 바라는 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글귀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평등’이 원칙이다. 그것은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에도 내재돼 있다. 대통령이 말했던 “과정의 공정”도 과정의 평등일 것이다.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도 지난 23일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인국공 사태를 일으킨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 19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뜻을 이미 밝힌 상태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