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올해 국정감사가 큰 이슈없이 초반부터 맥빠진 모습으로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성 질의’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를 감시ㆍ견제하겠다는 당초 공언과 달리, 국감장에선 생산적 논쟁이 사라졌으며 과거 자료를 재탕하는 구습을 상당 부분 반복하고 있다.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벌이는 여야 의원 간 공방전보다 국감장에 등장한 뉴트리나ㆍ이끼ㆍ치약 등이 더욱 이목을 끄는 상황이다.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 7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장에는 이른바 ‘괴물쥐’로 불리는 뉴트리나 한 마리가 난데없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이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수상 생태계 파괴 실태를 지적하기 위해 뉴트리아를 데리고 온 것. 하지만 이날 증인채택을 둘러싼 환노위 국감 파행으로 뉴트리아는 국감장 테이블에 서 보지도 못한 채 오후 내내 대기만 하다 돌아갔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의 국감장에선 “불법단속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전혀 되지 않는다”며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은 손수 이끼를 들어보이기도 했다. 이어 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장비 실태를 보여주기 위해 화재 진압복으로 중무장한 보좌관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도 까맣게 탄 소방복을 들고 나와 “치명적인 독가스를 배출한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배추, 무, 산낙지, 소고기 등이 난데없이 국감장에 나오면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에 대한 국감장은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이윤석 의원이 중금속 중독논란에 휩싸였던 낙지를 투명한 병에 담아와 “오세훈 시장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끝장을 보자”며 낙지 검사 결과를 따져 물었다. 국감이 정회된 이후, 오 시장을 비롯해 감사위원인 이 의원과 한나라당 김정권ㆍ안경률 의원이 이 낙지를 먹어 낙지의 안전성을 몸소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임동규 의원은 소방방재청에 대한 국감에서 ‘불쇼’를 하면서 국감장을 마치 ‘서커스장’으로 연상케 하는 일도 연출한 바 있다. 그는 부산 해운대 고층 아파트 화재 당시 불을 키운 알루미늄 패널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패널을 들고 나와 부탄가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다만 부탄가스 라이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다소 지체돼 그는 야당 의원들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한편 다수의 보좌관이 꼽은 국감장 최고의 소품 중 하나는 지난 2006년 문화일보의 연재만화인 ‘강안남자’의 선정성을 따져 물기 위해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들고 나온 일부 만화 컷이었다. 그는 “10월4일자 ‘강안남자’는 폰섹스로 한 회의 전체를 구성했고 인터넷 사이트 ‘유머’란에는 축구와 섹스의 공통점은 ‘골을 넣어야 하고 지구력과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게시해 놓고 있다”며 선정적인 만화가 담긴 일부 컷을 가져와 국감장 테이블에 올려놓기도 했다.
하루에 10여 군데 이상의 상임위에서 국감이 진행돼 각종 이슈들이 난무하는 터라 의원들의 ‘튀기 위한’ 노력들은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끌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정책 검증과 송곳 질의로 국감의 맥을 살려나가야 할 의원들이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작 중요한 정책이슈들이 묻히는 경우가 많다”며 “‘보여주기’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날카로운 질의로 정책국감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