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 회사채·CP 매입 윤곽

금융 안정 의지 시장에 전달

정부 보증 대신 선순위 회수

기업 신용도 평가 새기능 장착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 및 위기기업 지원을 위해 발표한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기구가 우여곡절 끝에 한 달만에 윤곽을 드러냈다.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금융기관이 아닌 일반 영리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에 나서게 됐다. 애초 한은이 요구한 정부 보증은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정부 출자와 차등 변제로 한은의 손실위험을 최소화했다.

저신용 회사채·CP 매입기구 설립 계획은 지난달 22일 발표됐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방식을 본 뜬 특수목적법인(SPV) 형태다. 하지만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고 한은이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대강의 얼개만 공개됐다.

이후 정부와 산업은행, 한은 간 자금조성 및 위험부담 범위, 대출 경로 등을 두고 이견이 드러났다,

한은은 SPV에 직접 연관되기 보다는 산은에 대출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정부 보증도 요구했다.

반면 정부는 이미 산은에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보증한 만큼 이를 거부했다.

20일 발표된 저신용 회사채·CP 매입 기구 설립안을 보면 한은이 결국 양보한 모양새다. 정부의 SPV 출자는 1조원에 그치고, 산은의 대출도 1조원이 전부다. 나머지 8조원은 모두 한은의 대출이다. 정부 보증도 없다. SPV가 한은 대출에 대해 선순위로 변제한다는 조건이 전부다.

한은 관계자는 “10조원 중 2조원까지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한은이 지원한 8조원에 대해선 손실 위험이 없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이날 SPV 직접 대출을 실시하게 된 배경에 대해 “금융안정에 대한 한은의 의지가 시장에 보다 명확히 전달되면서 그 효과도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아울러 정부의 산은을 통한 출자와 산은 후순위 대출을 통해 신용보강이 충분히 이뤄진 점도 SPV 직접 대출을 하게 된 배경”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은은 이번 대출로 일반기업에 대한 신용도를 평가할 새로운 기능을 갖추게 됐다. 한은법(80조)에 따르면 비영리법인에 대한 긴급여신을 시행하는 경우 한은이 해당 회사의 업무와 재산상황을 조사·확인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한은 관계자도 “SPV 운영위원회에 적극 참여하여 해당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며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앞으로 정부·산은 등과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