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뒀던 여동생이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했던 말이다. 웬만큼 키웠다며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초등학교의 이른 하교시간을 보고 갓난쟁이보다 초등학생에게 엄마가 더 필요하더라는 것이다. 동생에게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함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느껴져 참으로 안타까웠었다.

비단 그녀만의 이야기이겠는가. 하교후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이 한번씩 갑자기 그만두는 통에 지방에서 급하게 시어머니가 오가는 친한 동생, 아예 친정 근처로 이사해 할머니가 아이를 맞이하는 고등학교 친구, 퇴근시간까지 아이가 있을 학원을 알아보는 후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대학선배 등 학부모들은 늦은 퇴근 시간과 아이의 이른 하교시간의 간극을 메우기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어떻게든 버텨왔던 많은 엄마들이 결국 백기와 같은 사직서를 낸다. 뛰어난 능력으로 승진이 빨랐던 재무팀 부장님처럼 말이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나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8시 반에 등교해 4시 반에 집에 온다. 유치원과 같은 등하교 시간 덕분에 아이도 나도 큰 변화에 수월하게 적응하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만 수업이나 활동은 그리 무겁지 않다. 숙제가 없다. 방학숙제도 없다. 독서와 운동을 권장하지만 강제사항은 아니다. 수업의 학습목표는 명확하나 풀어내는 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교과서가 없으며 선생님이 준비한 활동과 놀이를 20분, 30분 단위로 짧게 진행해 아이들이 지겨울 틈 없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점심후 한 시간은 학교 체육관이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이 수업시간표에 포함돼 있다. 오후는 독서, 음악, 미술, 체육 등의 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초등학교를 시작하며 긴장했을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지고 학교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장맘인 나는 아이의 늦은 하교시간 덕분에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처럼 학교가 일찍 끝난다면 이 곳은 학원이 없으니 보모를 구하고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진땀을 뺄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니 아이에게 미술이나 음악 같은 과외수업을 따로 시키지 않아서 좋다. 집에 오면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들려주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축구를 배웠다며 규칙을 설명해주고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트럼펫을 연주하고 싶다고도 한다. 학교가 본연의 교육기관에 더해 보육과 과외활동 지도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하교시간이 되면 교문 앞에 수많은 학원차량들로 북적인다. 사실 학부모에게 학원은 퇴근시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선택지일 것이다. 만약 한국의 초등학교가 미국처럼 다양한 활동을 더한 시간표를 구성해 오후에 끝난다면 어떨까. 직장맘들은 안심하고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고 재취업을 희망하는 엄마들이 더빨리 사회로 나올 수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여성의 경력단절로 입게 되는 국가손실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방과후 시간을 학원이 아닌 학교가 맡으면 가정에서는 사교육, 선행교육 등 학원비 부담이 줄어 가정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오후시간을 학원을 전전하며 보내는 대신 친구들과 여러 활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실 학교야말로 가장 안심되고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겠는가.

내년 여름 한국방 문을 앞두고 걱정이 앞선다. 아이를 동네 초등학교에 보내려 하는데 방과후 아이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고민이다. 학원에 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