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브랜드 ‘몬테밀라노’로 백화점, 엄마 패션, 중저가 시장 개척
-기획부터 제조, 유통 일괄하는 SPA 방식으로 연매출 400억원
-“패션이야말로 중기가 대기업 이길 벤처, 감성 수치화 해야” 조언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백화점은 층마다 가격표의 ‘자리수’가 달라진다. 해외 명품을 제외하고, 자리수의 최고봉은 흔히 ‘마담 브랜드’라 부르는 매장이다. 점잖은 ‘어머님 스타일’의 옷들은 가격표를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난다. 티셔츠 한 장에 수십만원, 위 아래 구색 맞춰 뽑자면 100만원은 훌쩍 넘는다.
같은 층에 있는 몬테밀라노는 거기에 ‘0’을 하나 뺀 가격표를 붙여놨다. 눈을 의심케 할 정도의 가격이다. 브랜드 못잖게 대표도 독특하다. 미스코리아 이력의, 서양화를 전공한 유학도 출신 대표가 정착한 분야는 ‘엄마’다. 패션에서는 철저히 비주류인 ‘엄마 패션’으로 연 400억원의 매출을 일구고 있다.
“행복을 돈으로 사게 하고 싶었어요. 너무 ‘자본주의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모든 단계가 자본주의잖아요. 엄마들이 행복해야 사회 전체가 행복합니다. 엄마가 불행하면 다른 식구들한테 잔소리하게 되고, 그 스트레스를 받은 식구들도 하루가 힘들잖아요.”
엄마들의 행복을 위해 오 대표가 내린 처방은 백화점에서 부담없이 ‘가치 소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오 대표는 “엄마들이 행복하려면 옷이 저렴해야 하고, 매주 신상품이 나와야 하며, 물빨래가 가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여기에는 레오나드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MD 팀장을 하면서 엄마 고객들을 가까이에서 봤던 경험이 녹아있다.
“레오나드는 샤넬보다도 30% 가량 비싼 브랜드예요. 고객들은 백화점에서 가장 가격대가 높은 브랜드의 옷을 사면서 드라이값 3000원을 아까워 하더라고요. 엄마들의 부담을 덜게 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하고, 드라이값 안 들이게 하자. 엄마들이 자주 행복해지도록 일주일에 두 번은 신상품을 내주자고 생각했어요. ”
가격대를 낮추기 위해 고안한 것이 요즘 말하는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회사)다. 의류를 기획하는 것부터 제작, 유통까지 전 과정을 한 의류회사에서 도맡는 것이다. 인디텍스 그룹의 자라나 H&M, 망고, 유니클로 등 2010년대 글로벌 패션산업을 주름잡는 회사들의 방식이다. 린에스앤제이는 대표 브랜드 몬테밀라노를 통해 자라나 유니클로보다 앞선 2003년부터 이를 택했다.
디자인은 오 대표가 실장으로 있는 디자인실에서 직접 한다. 디자인은 사진으로 찍어 위챗 등 메신저로 중국 공장에 전달, 바로 시제품을 만든다. 오 대표는 이를 피팅해 마구 움직이며 수정사항을 동영상으로 찍어 직원들에게 보낸다. 이를 보완해 최종 상품이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채 안 걸린다. 이런 ‘속전속결’을 일주일에 두 번씩 19년 동안 거듭해왔다.
기존 의류회사에서는 피팅이 막내 디자이너들의 몫이었기에, 막내들은 옷 맵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살 빼라”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오 대표는 이런 방식을 ‘디자이너만을 위한 디자인’이 나오는 오류라고 지적했다.
“20대에는 예쁘다면 불편해도 참고 입겠지만 엄마들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옷이 예뻐도 팔 못 들고, 숨 못 쉴 지경인 옷을 몇 번이나 입을까요. 결국 경험치를 살려야 피팅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막내 디자이너가 하면 경험치가 적어서 제대로 피팅이 안됩니다.”
제대로 피팅을 살리지 못한 디자인은 아무 쓸모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디자인은 예뻐지 않아도 주인이 있지만, 패턴이 안 좋으면 주인이 없어요. 패턴 안 좋은 옷은 아무도 안 사갑니다. 그건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이지, 고객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예요.”
그의 고객 중심주의는 절대적이다. 오 대표는 “고객은 설득하면 안되고, 가르치려 해도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고객은 직관적이예요. 이해시키려고 하면 떠납니다. 저와 고객 사이에는 오로지 (옷을)사느냐 안 사느냐만 있어요. 고객한테 이유를 물으면 안됩니다.”
이런 고객 중심주의는 한 차례의 실패에서 나왔다. 2001년 오 대표는 몬테밀라노를 이탈리아 수입 의류 편집매장으로 시작했다 2003년 백화점 팝업매장(임시매장)을 빌려 재고를 덜어야 하는 처지까지 갔다. 재고처리를 위한 행사에서 1만9000원으로 가격을 낮춘 니트 티셔츠 80벌이 1분만에 동나는 것을 보고 ‘가격은 손님이 정하는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저렴한 가격으로 엄마 대상 패션을 하기 위해 직접 기획부터 제작, 유통을 총괄하는 패스트패션을 고안했다.
단명할 처지였던 몬테밀라노를 ‘엄마들을 위한 패스트패션’으로 변신시킨 오 대표는 “패션이야말로 벤처”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분야가 IT와 패션입니다. 패션은 트렌드가 변화무쌍한데, 대기업은 단계마다 컨펌(결정)해야 하는게 너무 많아요. 반면 중소기업은 단계가 적어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패션이야말로 ‘감성의 벤처’예요.”
그는 대기업도 이기는 패션사업을 위해 역설적으로 감성을 빼라는 조언을 이어갔다. “패션 사업은 감성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감성을 이성화, 수치화하고 꿈을 철저하게 계산해야 합니다. 디자이너 혼자 꿈 따라가다보면 직원들만 고생시키고, 절대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기업이 못 나옵니다.”
오 대표는 최근 패션계 유명인 자녀들이 부모 후광으로 업계에 손쉽게 자리잡는다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도 “결국 본인의 성실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전했다. “대기업도 하기 힘든게 패션 사업인데, 부모가 지원해준대도 얼마나 해줄 수 있겠어요. 디자이너들 세계는 피라미드입니다. 20대, 30대는 엄청 많다가 40대쯤 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면서 80%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탤런트(재능)는 아주 작은 부분이고 부모 후광은 단기일 뿐, 남들의 조력이 없으면 못합니다. 주변의 조력을 이끌어내려면 결국 성실해야 합니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 옷을 만든다는 그의 행복도는 얼마나 될까. 인터뷰 말미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하다고 전했다. “감사한 일 세 가지를 꼽자면 정말 좋아하는 옷(패션 사업)을 한 것, 어린 나이에 옷으로 망한 것, 망했는데 또 옷을 해서 일어선 것이예요.”
어려움을 겪어봤기에 오 대표에게 돈은 좋기에 앞서 ‘무서운 것’이었다. 그는 돈 욕심보다 일 욕심, 사람 욕심을 더 냈다. “회사가 유지된다면 계속 일하고 싶어요. 직원들한테도 60세는 요즘 너무 젊지 않냐, 우리 75~80세까지 같이 일해야 하지 않냐고 권해요. 10년 이상 일한 직원들은 ‘생사여탈권’이 제 손을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이 아니라, 파트너이고 동반자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