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1987년 처음 조사된 자산 10억달러 이상을 보유한 세계 억만장자(왕족 및 독재자 제외)는 모두 140명이었다. 올해 억만장자는 1645명으로 27년 전보다 11배 이상 늘었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총액은 같은 기간 2590억달러에서 6조4000억달러로 24배 넘게 증가했다. 억만장자에 대한 부의 집중이 그만큼 심화된 것이다.
1987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슈퍼리치의 산실이었다. 연일 오르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에 부자들이 속출하던 시기였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세계 최고 부자는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ㆍ79) 일본 세이부(西武) 그룹 회장과 일본의 부동산재벌인 모리 다이키치로(森泰吉郎ㆍ1904~1993)가 번갈아 차지했다. 쓰쓰미 회장은 당시 골프장 27개, 스키장 25개, 호텔 56개, 철도회사 여러개와 프로야구단 등을 소유했던 철도ㆍ부동산 재벌로, 1987년부터 4년간 1위를 차지했다. 1991년에는 쓰쓰미 전 회장이 140억달러로 2위로 내려앉고 일본의 부동산재벌인 다이키치로가 150억달러로 1위로 올라섰다. 요코하마 상대학장을 하다 1959년 부동산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번 다이키치로는 도쿄에 빌딩 82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일본의 ‘버블 경제’ 덕분에 한국인 사업가도 세계 최고의 자산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신격호(93)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988년 총자산 80억달러로 4위, 1989년에는 5위, 1990년에는 9위에 올랐다. 1991년에는 빠찡꼬 기계 제조업체인 평화공업사를 경영하던 재일교포인 나카지마겐키치(中島健吉, 한국명 정동필(鄭東弼)) 회장이 61억달러의 재산으로 10위를 차지했다. 나카지마 회장은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척식대 상학부를 졸업한 뒤 빠찡코 사업에 뛰어든 뒤 억만장자가 됐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억만장자 수로는 가장 앞섰지만 상위 10위에 든 부자는 거의 없었다. 1987년 상위 10위 명단에 일본인은 6명이었지만, 미국인은 없었다. 1989년에도 일본인 6명, 미국인은 1명이었다. 1991년이 돼서야 10대 부자 명단에 일본인 4명, 미국인 3명으로 비슷해진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올해 상위 10위 명단에 일본인은 없고 미국인이 8명에 달한다. 국가별로 보면 1987년 억만장자 140명 중 미국이 41명으로 앞섰고, 일본 24명, 서독 13명 순이었다. 1989년 미국 55명, 일본 44명으로 좁혀졌으나 1990년 미국 99명, 일본 40명으로 다시 차이가 커졌다.
1995년에는 처음으로 미국인이 세계 최고의 갑부로 올라섰다. 1995년 빌 게이츠(59)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자사의 주식이 급상승한 덕분에 순재산이 전년의 82억달러에서 129억달러로 늘어나 세계 제일의 거부가 됐다. 이때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자산 62억달러로 세계 9위에 올랐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는 빌 게이츠의 시대였다. 게이츠 회장은 2007년 총 560억달러의 재산을 보유, 13년간 세계 최고갑부 자리를 지켰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일본의 몰락과 러시아와 인도 부자들의 약진이 뚜렷히 나타났다. 20년간 최고 갑부 상위권을 휩쓸어온 일본은 2007년 24명만이 이름을 올린 반면, 러시아와 인도는 각각 53명과 36명의 부호가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한때 세계 최고 갑부였던 쓰쓰미 회장은 2005년 재무보고서 위조와 내부자 거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2007년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서 아예 빠졌다. 2007년에는 중국인 사업가로는 처음으로 청얀(張茵) 주룽(玖龍)제지 회장이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 올랐다. 2010년부터는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74) 회장이 4년간 1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슬림 회장은 원자재 투자실패로 10억달러의 손실을 내면서 올해 1위 자리를 게이츠 회장에게 내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