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들을 믿지 않는다.
검찰에 대한 신뢰의 근거는 유리만큼 약해졌다.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칼’ 역할을 해왔던 검찰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과 고(故) 장자연 씨 사건 등 부실수사 논란으로 개혁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진실규명을 위해 검찰이 나서야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검찰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깊어졌으니 과거사 진상규명의 길이 순탄할 리 없다. 당장 대검찰청과 대검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과정을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조사단은 대검이 출금에 사실상 반대했다고 주장하고, 대검은 오히려 조사단이 자진철회했다고 반박한다. 검찰 수사단의 수사가 한창인데 갈등이 일파만파로 번지니 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오늘날 시대정신으로 보면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는 정의구현을 목적으로 한 선제적 조치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1명의 억울한 자도 만들지 않기 위해 99명의 범죄자도 놓칠 수 있어야 한다’는 형사법상의 원칙을 고려하면 정식 피의자로 입건되기 전 이뤄진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는 법리에 맞지 않다. 법무부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피내사자’라고 규정하고 출국금지 조치 할 수 있는 사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김 전 차관은 출국하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법리논쟁을 뒤로 하고 법무부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재수사를 공식표명했고, 특별수사단이 공식출범했다. 정부는 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국회에서는 검찰과 완전히 분리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 재수사는 시작됐다.
어떤 프로젝트나 구조업무, 수사 등이 이뤄질 때는 실무자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무리 불신이 깊고 온갖 은폐정황과 외압의혹이 있더라도 결국 그 업무를 실행하는 건 실무자다. 당장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조사단과 검찰 간 진실공방이 국민에게 어떤 실익을 주는지 의문이다. 조사단의 의혹제기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어제오늘 불거진 것도 아니고, 조사단을 향한 외압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문제는 김 전 차관의 재수사가 종결된 뒤 소집될 점검위원회를 통해 제기해도 되지 않을까.
대검도 마찬가지다. 김용민 대검 과거사위 주무위원이 지난 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자 대검은 이날 저녁 조사단 측과 나눈 쪽지내용을 공개했다. 대검이 공개한 사진자료에는 지난달 20일 오후 5시 4분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에게 “적법절차 준수 등 감안해 의견이 없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라는 내용의 쪽지가 담겨 있었다. 대검의 억울한 심정은 알겠다. 그러나 대검은 당초 조사단의 주장에 대한 해명을 내부적으로 했다. 비록 김 주무위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대검을 비판했지만 ‘개인 명의’로 기자회견이 이뤄졌다. 조사단과 대검의 ‘공식입장’이 아닌 사안을, 그것도 검찰 재수사가 이뤄지기 전 있었던 문제를 두고 양측이 지금 당장 장외전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과 언론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검찰과 조사단의 갈등을 막을 순 없다. 검찰이 법리에 따라 거악을 척결할 의무가 있다면 조사단은 법리의 구멍을 시대정신에 반영해 해소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것 모두 당장의 검찰 수사가 이뤄진 다음의 일이다. 검찰의 재수사 역시 ‘제 식구 감싸기’에 불과했다면 수사 이후 소집될 점검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수사발표 이후 각종 규탄성명으로 감찰개혁을 촉구하면 된다. 당장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강한 상태에서 수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수사의 독립성을 해칠 뿐더러 공정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의 진상조사단 감사청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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