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사상 첫 분리국감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것 다 제쳐놓고서라도 그 손실액이 액면 그대로 10억 원을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무위도식 국회가 거액을 한 입에 꿀꺽한 겁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피감기관 398곳은 국감 무산 휴유증에 시달리게 생겼습니다. 여름휴가도 반납하면서 국감준비에 진땀을 뺐는데 헛수고가 되고 만 겁니다. LH공사의 경우 1500인 분의 도시락 주문이 이미 성사돼 취소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해외국감의 경우 취소로 항공 위약금을 물어야 할 판입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국감 생중계에 드는 장비 임대료와 행사연기에 따른 혼선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국회의 민폐, 아니 정치권의 민폐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정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민폐에서 출발하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 갖은 ‘갑’들의 육갑떠는 갑질에 을들의 피해가 천태만상으로 불거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이 잽싸게 시류에 편승했었습니다. 자신들은 을의 대변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절묘하게 이름 하나 붙여 위원회를 만듭니다. 바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그 것입니다. 표현력으로 따지면 언론쪽의 순발력이 돋보인다지만 가끔씩 정치권의 코멘트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을지로위원회라니... 참으로 절묘합니다.
그런 제1야당이 엊그제부터 제대로 갑질을 한 겁니다. 국감 국회가 무산 된 것은 정치력 상실의 여당과 떼쓰기 본좌 근성의 야당이 빚어낸 정치 참사이지만 어깃장으로 따지면 야당이 더책임이 무겁다는 겁니다. 피감기관들은 그래도 정치권 눈치 보느라 대놓고 입도 한번 삐죽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구린 구석이 있어서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떳떳하게 사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묘한 역학관계입니다.
파행국회의 한 쪽인 새정치연합의 박영선 의원의 직함은 ‘국민공감혁신위원장’입니다. 한마디로 비상대책위원회, 그러니까 비대위입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 참패한 뒤 꾸린 위원회인데 국민공감혁신을 갖다 붙인 겁니다. 그런데 지금 공감이 얼마나 클까요. 새정치연합에 붙은 새정치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당의 강경파들은 박 위원장이 주도해 만든 세월호 여야합의 내용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합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버럭 반대하고 나섰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내용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합의 자체를 반대하는 겁니다. 타협의 길을 버리고 결국 강경파에 치여 1인 피켓시위를 하는 박 위원장이나 광화문광장에 진을 치고 일주일 넘게 동조단식 중인 문재인 의원 모두 보기에 딱합니다. 때와 장소부터 가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월주스님 등 종교지도자들이 차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중재를 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타협과 양보를 양측에 주문합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어른의 목소리 같습니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새정치연합내 15명의 중도파 의원들이 마침내 장외이탈정치에 대해 대응하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 11명은 연판장에 서명까지 하고 당내 강경파와 그들에 휘둘리는 지도부를 성토했습니다. 이들에 동조하는 다수 있지만 눈치 보느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내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 중 한 사람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47)가 단식 46일째, 병원 입원 일주일만인 28일 단식을 중단키로 했다고 합니다. 김 씨의 둘째 딸 유나양의 간곡한 부탁과 설득이 주효했던 모양입니다. 옳은 선택입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김 씨의 단식 중단을 밝히면서 문재인 의원에게도 단식 중단과 정상적인 정치복귀를 주문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천막치고 돗자리 깔고 앉은 ‘덩달이’ 단식자들은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기보다 외려 짐이자 부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잃지 말아야 할 자식과 가족을 잃고 사회 안전망을 원망은 하되 국가를 생각해 슬픔을 극복하고 수습해 일상을 되찾는 선진국 부모들의 스토리가 마냥 옳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국가와 대의를 위한 자기희생과 헌신의 미덕이 존경스럽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