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선임기자]청명한 하늘에 따가운 햇살,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늦여름과 초가을의 문턱에 있음을 알려주는 계절. 추석 명절을 1주일 앞둔 29일 오전 한강 망원선착장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날 마포구와 마포문화원이 마련한 ‘밤섬 실향민 고향방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옛 밤섬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었다.
밤섬은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주민 450여 명이 선박 수리와 농업, 상업을 하며 오손도손 살아가던 아름다운 섬이었다. 와우산에서 바라보면 밤처럼 생긴 섬에 맑은 모래사장이 아름다워 율도명사(栗島明沙)라고 불렸으며, 마포 8경의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1968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한강개발과 여의도 건설을 위해 섬을 폭파하면서 당시 62가구 443명의 주민들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되는 운명을 겪었다. 그들은 와우산에서 사라진 고향을 바라보며 허전함을 달래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류에서 내려온 바위와 모래, 자갈이 한켜한켜 쌓여 다시 섬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24만㎡, 약 7만3100평의 거대한 섬이 되었고, 사람이 떠나간 자리엔 흰뺨검둥오리, 알락할미새, 중백대로, 왜가리 등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실향민과 인근 주민 300여 명을 태운 예인선이 물살을 가르며 양화대교와 당산철교를 지나 밤섬으로 접근했다. 멋대로 자란 갈대와 버드나무, 갯버들이 무성한 밤섬이 나타났다. 섬은 생각보다 컸고 숲도 무척 우거져 있하다. 사람들은 낮은 탄식을 터트렸다.
행사는 기념식에 이어 실향민들의 귀향제, 밤섬과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굿 ‘밤섬 부군당 도당굿’으로 이어졌다.
마포 도박이인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어린 시절 밤섬으로 놀러와 모래밭에서 뒹굴고 싸우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1998년부터 추석 맞이 고향방문 행사를 격년제로 하다가 이제는 매년 실시해 마포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최병길 마포문화원장은 “서운함과 애틋함, 추억이 쌓이듯이 상류의 퇴적물이 쌓여 다시 섬이 만들어졌다”며 “추석맞이 고향방문 행사가 섬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처럼 주민들의 희망을 쌓아가는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의 허전함과 애잔함은 여전해 보였다. 섬이 폭파돼 사라지고 고향을 떠난지 46년이 지났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애잔함은 더욱 진해지는 것 같았다. 고향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유년과 청년시절을 이 섬에서 보내고 29세 때 섬을 떠나야 했던 유덕문 실향민 대표 겸 밤섬보존회장(76)은 “밤섬을 떠나기 직전까지 형님과 노를 저어 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며 “호롱불에 한강 물을 마시며 지냈지만 한 동네 사람들이 모두 형제처럼 지냈다”고 회고했다. 유 회장은 “주민들이 와우산 기슭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와우산이 개발되면서 뿔뿔이 흩어져 오늘 모인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하다”며 “철새들에게 고향을 내준 것이니 서운하지, 군사정권만 아니었으면…” 하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 회장과 동갑나기인 성정부(75)씨는 “밤섬 뒤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큰 바위가 있었는데 홍수가 나도 그 바위를 넘는 경우가 없었다”며 “그 바위를 폭파해 윤중제를 쌓아 여의도를 만들었으니 이곳 밤섬 주민들은 애국자”라고 목청을 높였다.
점차 박자가 빨라지기 시작한 밤섬 부군당굿의 괭과리와 북소리가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퍼졌다. 이 굿은 60년대 말까지 밤섬에서 행해지던 전통굿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그 굿소리만큼이나 애잔함이 가득한 특별한 고향방문 행사였다.
글 · 사진=이해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