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청 리더십ㆍ사람 중심 ‘믿음 경영’ 실천 - OB맥주 매각 등 체질개선…글로벌 두산 초석 - 국내 최초 연봉제 등 ‘선진경영’ 도입도 - 두산 첫 업무는 공장청소ㆍ맥주병 씻기 - 6.25전쟁 참전용사…야구사랑도 각별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나는 무엇보다 사람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잘나고 못나면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노력하는 사람, 그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합니다. 모든 사원이 일생을 걸어도 후회 없는 직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3일 별세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사람 중심의 믿음 경영을 실천한 ‘침묵의 거인’으로 통한다.

박 명예회장은 “두산의 간판은 두산인들”이라며 “나야 두산에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지만 두산인은 영원하다”고 인재중심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박 명예회장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생전 박 회장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그는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두산 첫 업무는 ‘공장청소ㆍ맥주병 씻기’=1932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용곤 명예 회장은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3년 동안 은행 생활을 한 박 회장은 1963년 4월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

이후 선진적인 경영을 잇따라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국내 최초 연봉제 등 선진경영 도입=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세를 불렸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에 취임해 세계적인 통신사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두산그룹 회장 재임 시 그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에는 토요 격주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또 여름휴가와 별도의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혁신’ 통한 글로벌 두산 100년 초석=박 명예회장은 명실상부 ‘혁신’ 선봉장이었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 사로 재편했다.

이어 당시 두산의 대표사업이었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획기적인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해 나갔다.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6.25전쟁 참전용사…야구사랑도 ‘각별’=박 명예회장은 6.25전쟁 참전용사와 각별한 야구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박 회장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그는 통신병으로 비밀훈련을 받고 암호취급 부서에 배치된 후 해군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청진 앞바다까지 북진하는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용한 성품 때문에 이 같은 공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뒤늦게 인정을 받아 2014년 5월 6.25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 받았다.

야구 사랑도 각별했다.

박 회장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2군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 약력

1932년 서울 생 경동고등학교 졸 1959년 미국 워싱턴 대 경영대학 졸업 1960년 한국산업은행 입행 1963년 동양맥주㈜ 입사 1966년 한양식품㈜ 대표이사 사장 1973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부사장 1974년 두산산업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1974년 합동통신사 대표이사 사장 1974년 한국신문협회 이사 1978년 두산산업㈜ 대표이사 회장 1981년 두산그룹 회장 1981년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1981년 국제상업회의소(ICC-KNC) 의장 1982년 프로야구단 ‘OB BEARS’ 구단주 1983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1996년 두산그룹 명예회장 1998년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 2008년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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