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임기준 논의도 못해 일정상 시행 불가능해 재계 “안한 것 아니냐”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연금의 막대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추진됐던 ‘의결권 위임’이 올 3월 주총 시즌에는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국민연금의 주식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는 민간 운용사들이 의결권도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합의는 이미 지난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할 당시 이뤄졌으나, 의결권 위임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가 반년이 되도록 시작조차 못 한 탓이다.

8일 보건복지부 및 관계부처에 따르면 ‘투자일임업자의 의결권 위임행사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은 내달 중 시행된다.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장기적으로는 민간 운용사들의 의결권행사 역량을 제고시키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하지만 3월 주총 시즌까지 국민연금의 의결권 위임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할 당시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의결권 위임에 앞서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아직 이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모든 운용사에게 의결권을 위임할 것인지, 혹은 전담 조직체계를 일정 규모 이상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등 위임 기준을 정해야 한다. 이밖에 ▷의결권을 충실히 이행했는지에 대한 평가 방법 ▷향후 위탁운용사 선정에 반영할 가점 산정 방식 ▷의결권을 회수하는 요건 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달 중순 있을 기금운용위 회의에 관련 안건이 올라올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복지부 측은 시행령 개정이 늦어졌기 때문에 관련 논의도 지연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시행에 민감한 경제계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시일은 걸릴지언정 법제처 심사 통과 자체는 무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이를 핑계로 논의를 미뤄왔다는 것은 핑계”라며 “의결권 위임의 실효성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스튜어드십코드와 관련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