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한국호 침몰 경고하는 시그널 -통합만이 물질, 정신 조화 이루는 건강사회 구현 [헤럴드경제= 정태일 기자]뇌로 공급되는 혈액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다시 이어져 순간적으로 뇌가 쇼크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전문용어로 ‘일과성뇌허혈증(TIA, Transient Ischemic Attack)’이라고 부른다. 증상이 보통 몇분 정도만 잠깐 나타나 ‘별일 아니겠지’하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슷한 것으로 ‘가역성허혈성신경학적결손(RIND, Reversible Ischemic Neurological Deficit)’이라는 용어도 있다. 이는 뇌기능 장애가 서서히 나타나 발병 후 24시간 이상 지속되다가 다음날부터 좋아지면서 3주 후면 깨끗이 사라진다. 때문에 대게는 피로나 스트레스에 따른 빈혈 정도로만 여긴다.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이 증상 둘 다 뇌졸중(중풍, stroke)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일종의 ‘시그널’로 보고 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중풍끼’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환자들은 그 ‘끼’를 감지했음에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점에만 안도해 평소처럼 생활하다 어느 순간 봉변을 당하게 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우리나라 최초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 국회의장인 정의화 의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도 환자로 치면 이 중풍끼가 엄습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정 의장은 “뇌졸중으로 가기 1, 2년 전 우리 몸에 시그널이 오는데 사람들은 이상이 없어지면 도로 술 마시고, 짜게 먹고 그러다가 뇌졸중에 걸린다”며 “우리 사회도 이런 시그널이 왔는데 병리현상 수준이 거의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라고 밝혔다.

정 의장이 지적한 이상 징후는 바로 가치관이다. 정 의장은 “우리도 모르게 모든 것이 물질주의로 가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으려면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질은 우리를 안락하게 해주고 정신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돈만 벌면 행복해지는 줄 아는데 결과적으로 자꾸 허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이 같은 가치관의 문제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나타났다. 세월호는 한국호 침몰을 경고하는 일종의 마지막 시그널”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나면서 세월호의 슬픔과 충격이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의사 출신 국회의장이 우리 사회에 내린 일종의 ‘진단’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진단이 나왔으니 이제 처방이 필요하다. 정 의장은 우리 사회가 세월호의 시그널을 받아들여야 ‘사회적 뇌’가 마비되는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래야 세월호 참사로 아깝게 고인이 된 사람들 넋을 달래줄 수 있고, 건강한 사회가 돼야 그 넋이 위안되지 않겠나”고 말했다.

정 의장이 인터뷰에서 힘주어 말한 처방전은 바로 ‘건강사회’였다. 이는 20여년 전 그의 정치인생이 막 시작될 무렵 정 의장이 막연히 품었던 정치 이상(理想)과 궤를 같이 한다. 1995년 당시 부산 최고 명문 의료기관인 봉생병원을 이끌며 신경외과 전문의로 촉망받던 정 의장은 그 해 말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마치 출병의 각오를 밝힌 제갈량처럼 정 의장도 한 장의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출사표에서 소위 잘 나가는 병원을 뒤로하고, 의사로서의 풍족한 삶을 마다하고 왜 정치판에 뛰어드는지 소상하게 밝혔다. 크게 여섯 가지다. ▷의사 경험을 토대로 보건복지 정책에 기여 ▷전문가의 정치참여로 문민정부 개혁에 이바지 ▷정치권의 세대교체 참여 ▷참신한 전문가 공천 활성화 ▷정경유착 정치풍토 개선 ▷정치로 건강사회 구현 등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건강사회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는 그가 왜 정치를 하려는지 그 명분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20년 의사 경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1995년 이전 20여년간 정 의장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며 환자의 건강을 책임져 온 의사였다. 그가 병원장으로 있던 병원 이름도 생명을 받든다는 의미의 ‘봉생(奉生)’인 것처럼 1995년까지 정 의장은 누구보다 목숨에 깊은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사회의 모순과 비상식에 눈을 떴다. 마치 세월호의 시그널을 진단한 것처럼 1995년 정 의장은 문민정부 출범 초기에도 5ㆍ6공 군사정권의 잔재가 가시지 않았다고 봤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가 아픈데 눈앞의 환자 치료에만 열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의화표 슬로건인 건강사회다.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이 같은 의식에서 출발한 정 의장은 이듬해인 1996년 4월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2%의 득표율로 부산 중구ㆍ동구에서 당선됐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 내리 5선을 하며 지금의 국회의장까지 된 것이다. 이로써 정 의장의 경력도 의사로서 20년, 정치인으로서 20년으로 똑같아졌다.

지난 40년을 의사와 정치인으로서 반반을 살아 온 정 의장은 책임감으로 따지면 정치가 의술보다 훨씬 더 크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은 “의사를 하면서 내가 수술해서 살릴 수 있는 사람, 내가 아니면 안 될 사람이 평생 몇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며 “아무리 많이 잡아도 몇 천 명 정도지만 정치는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서 수십, 수백만 명이 죽거나 마음의 병을 갖게 된다”며 정치판으로 입문하면서 다졌던 각오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중환자 수준의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정치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정 의장은 설파했다. 정치에 막 입문할 당시 가졌던 건강사회에 대한 신념이 2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의장은 통합의 정치만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를 통해 통합의 정신을 사회에 뿌리내려야 하고 이를 통해서만이 물질 일방향으로 가고 있는 현재의 이상 증세를 고쳐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의화 국회의장.이길동기자.gdlee@heraldcorp.com. 2014.08.11.

정 의장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를 뭉치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서로 양보해서 하나가 돼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통합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내가 옳니, 네가 옳니’하며 서로를 평가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여야 갈등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잇따라 무산되고 국회 본청 앞에서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이 연일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통합의 단초 역할을 해야 할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에 대한 침통한 심정을 드러낸 셈이다.

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까. 정 의장은 통합의 정신을 다시 일깨우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일종의 정신운동으로 통합과 조화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기본 취지다. 정 의장은 “초선 시절 3제 운동이라고 해서 제 탓하기, 제 할 일 먼저하기, 제 몫 함께 나누기 등을 나 혼자 주창한 바 있는데 3제 운동 일환으로 전문가를 참여시켜 연말이나 내년 봄에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 정신운동을 연구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과거 새마을운동처럼 16개 시도시 전국적으로 정신운동을 펼쳐 여기에 언론계, NGO 등도 합세할 수 있도록 의장이 밑자리를 깔아주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합에 대한 정 의장의 신념과 의지는 나아가 통일이라는 더 큰 세계로도 이어져 있었다. 정 의장은 “통일은 무조건 가야 하는 것이지 주판알 튕기며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차원을 뛰어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격화되는 동북아시아 대치 상황에서 통일은 우리 민족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점에서다.

이에 정 의장은 훗날 통일시대에 대비해 10년 전부터 사비를 털어 준비 중인 것이 있다. 그는 북한의 인구 30만명이 이용할 수 있는 지점에 병상 30개가 있는 병원 30개를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이것이 종자병원이 돼 종합병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한민족의 건강을 위해 병원을 지어줬다는 얘기가 나오면 동질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죽기 전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만이라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통일과 통합을 말할 때마다 안경 너머 그의 눈은 열망으로 빛났다.


정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