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링·시뮬레이션 개발 활용 테스트 부담 줄이고 효율성 향상 포르쉐·아우디 등의 명차탄생 큰 도움 에너지·헬스케어 中企와도 협력 인력풀 확대 위한 트레이닝센터도
[슈투트가르트(독일)=손미정 기자] # 3면이 까만 2평 남짓의 공간에 들어서서 시뮬레이션용 안경을 착용했다. 곧 커다란 굴뚝이 눈 앞에 나타났다.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연상시키는 기기를 조작하자 어느덧 굴뚝 안에 들어와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밑으로는 아찔하고 위로는 한없이 높은 현실감에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윽고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점들이 수 없이 나타나 나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갔다.
볼프강 쇼테(Wolfgang Schotte)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기자가 들어와있는 곳은 한 발전소에 설치된 배기구. 점들은 발전 후 매출되는 연기의 열입자들이라고 했다. 붉을 수록 열입자의 온도가 높다는 뜻이다. 해당 시뮬레이션은 에너지 최적화 사업을 하는 한 스타트업과 함께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다시 기기를 조작해 배기구의 상부로 올라가니 쿨링(cooling) 기기를 거친 빨간 입자들이 점차 주황색,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쿨링 기기를 거치면서 열입자의 온도가 내려갔다는 뜻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정보가 하나도 없던 기자도 몇 분의 시뮬레이션 만으로도 배기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열이 어떻게 이동하고 바뀌는 지 쉽게 이해가 갔다.
그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발전 후 열입자들이 어떻게 운동을 하고 배출되는 지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처럼 시각화를 하면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뿐더러 향후 결과도 예측 가능하다”고 밝혔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에 있는 고성능슈퍼컴퓨터센터(HLRS). ‘자동차의 도시’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이 곳은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M&S)’을 활용해 굴지의 완성차업체와 협업, 관련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는 대표적인 슈퍼컴퓨터센터다.
자동차 주변의 공기흐름을 가상현실로 재현해 포르쉐의 신형 박스터, BMW 미니, 아우디 A8 등 세계적 명차 탄생에 일조한 것도 바로 이 곳 HLRS다.
▶“기업에게는 시간ㆍ비용 절감이 곧 ‘경쟁력’”=기업들은 HLRS의 슈퍼컴퓨터 자원을 활용해 제품 출시 전 부품 성능을 테스트한다.
앞선 발전소 배기 시스템 사례와 같이 시설이나 건물을 설계하기 전 미리 모델링을 통해 결과를 예측하고, 문제점을 빠르게 도출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개발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셈이다.
미캬엘 레쉬(Michael Resch) HLRS 소장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량, 차량용 부품사들과의 협력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며 “특히 자동차산업의 경우 개발하는 데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HLRS가 협력하고 있는 산업 분야 역시 모빌리티에만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와 기후변화, 환경이슈, 헬스케어 등도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산업계와 협력하고 있는 주요 분야들이다.
레쉬 소장은 “협력사 중에는 다임러, 보쉬, 포르쉐 등이 가장 유명하지만 크고 작은 형태의 기업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HLRS는 직원이 8명 밖에 없는 스타트업, 애니메이션 제작사, 제약사 등과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HLRS의 슈퍼컴퓨팅 자원과 산업계과 활발히 협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임러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가 함께 세운 ‘HWW’의 역할이 컸다.
지난 1995년 설립된 HWW는 산업계에서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다. HWW 설립으로 인해 슈퍼컴퓨터에 대한 기업들의 접근성이 높아진 셈이다. 현재 HLRS는 HWW 지분 18.75%를 갖고 있다. 다임러의 자회사인 T-system과 포르쉐 역시 각각 40%,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레쉬 소장은 “HWW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계산하는 시간을 파는 개념의 기업”이라며 “기업들이 슈퍼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기업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슈퍼컴퓨터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바로 SICOS다.
슈투트가르트의 자회사 격인 SICOS는 중소기업들에게 슈퍼컴퓨터 자원을 제공하고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다만 중소기업의 ‘의뢰’가 프로젝트로 발전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중소기업 자신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사업 자체의 경쟁력도 있어야 한다.
레쉬 소장은 “어느 정도 잘하는 분야나 기술력이 있을 때 (중소기업과도) 협력이 가능하다”면서 “프로젝트로 발전할 경우 필요한 자금을 펀딩해야하고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부분”이라고 밝혔다.
▶탄탄한 지원이 바탕…슈퍼컴퓨터 인재 확대 위한 ‘트레이닝’ 센터도= 이처럼 HLRS가 굴지의 슈퍼컴퓨터 역량을 보유하는 동시에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가령 슈퍼컴퓨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나 쿨링 비용은 대학과 정부에서 지원이 이뤄진다. 레쉬 소장은 “슈퍼컴퓨터 유지 비용이 매우 비싸다”고 말했다.
약 1240만 유로에 달하는 HLRS의 1년 예산 중 340만 유로 가량 역시 주정부가 지원한다. 나머지 50만 유로는 학교에서, 그리고 590만 유로는 각종 연구 등 프로젝트를 통해서 센터가 자체 충당한다. 나머지 260만 유로는 산업계와 협력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이다. 고무적인 것은 프로젝트와 산업 지원을 통해 얻는 수익의 비중이 매해 늘고 있다는 점이다.
HLRS는 단지 연구, 기술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인적풀을 늘리기 위한 트레이닝 센터도 만들었다.
레쉬 소장은 “지난 7월 트레이닝 센터를 만들었으며 4년 반 기간 동안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HLRS는 트레이닝 대상을 학생, 연구원, 관련 산업종사자 뿐만 아니라 직업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레쉬 소장은 “직업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훈련 대상을 늘림으로서 직업 교육 측면에서도 트레이닝 센터를 활용할 계획”이라며 “프로젝트가 끝나도 노동부 등의 지원 하에 실업자 대상 교육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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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지원=한국언론진흥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