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치료를 위한 비용 마련이 가장 걱정” -보험 적용 안되면 한해 치료비 수천만원도 -“위험분담제ㆍ신속한 보험급여 등재 등 필요”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 난소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55) 씨는 최근 걱정이 많다. 암이 더 악화될까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내년부터 치료비 부담이 높아질 것 같아서다. 이 씨는 BRCA 유전자 변이에 의한 난소암을 앓고 있는데 지난해 10월부터 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표적치료제를 쓰면서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적었다. 하지만 이 치료제는 한시적으로만 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신약이기에 내년 1월부터는 비급여로 바뀐다. 한 달에 몇 백만원이나 하는 약값을 이 씨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치료제로 바꿀 수도 없다. 이 씨는 무엇보다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암, 자가면역질환 등에 좋은 효과를 보이는 혁신신약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약값이 너무나 비싸 환자가 약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고가 신약에 대한 위험분담제 적용, 건강보험 대상 확대, 신속한 보험 등재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좋은 약 많지만 높은 약값 때문에…=지난 29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이명수 의원은 “의약기술의 발전에 따라 신약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데 암ㆍ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에 대해 효과가 우수한 약이 많아지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신약들은 약가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좋은 약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약값이 너무나 비싸 환자들이 느끼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이 2016년 조사한 ‘암환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암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37%)’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실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아 비급여로 써야하는 신약들은 한 달 비용이 몇 백만원에 이른다. 1년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만원 단위로 커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항암제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많이 개발된 바이오의약품은 고가인 경우가 많아 보험 적용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경제력이 되는 일부 환자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에 환자 단체는 꾸준히 고가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고가 신약의 신속한 환자 접근권 보장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안기종 한국환자연합회 대표는 “헌법이 경제적 능력에 상관 없이 생명과 직결된 신약 접근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약을 쓰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며 “치료제가 있음에도 높은 약값과 더딘 급여화로 돈이 있는 환자만 약을 쓸 수 있고 돈이 없는 환자는 약도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다국적제약사 꼼수 부린다는 지적도=한편 이런 혁신 신약들을 국내 약가가 너무 낮다는 이유로 일부러 국내에 들여오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역시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다국적제약사들이 국내 약값이 낮다는 이유로 아예 신약을 들여오지 않거나 건강보험 적용을 신청하지 않는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현재 개발된 많은 혁신신약은 다국적제약사 품목이 대부분이다.
최 의원에 따르면 희귀의약품 318개 품목 중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의약품은 76개(23.9%), 국내 미허가 의약품은 14개(4.3%)다. 희귀의약품 10개 중 3개는 환자들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한국의 약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45% 불과한 것 때문에 다국적제약사들이 일부러 건강보험에 등재하지 않고 비급여로 팔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복지부는 국내 약가가 결코 낮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최 의원의 지적에 대해 “공식 가격과 환자에게 실제 판매되는 가격에 차이가 있는 외국과 달리 국내는 단일 가격제를 택하고 있다”며 “외국에서 실제 거래되는 가격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약값이 낮지 않다”고 했다.
아비 벤쇼산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도 “과거 환자가 신약에 빠르게 접근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은 개선의 여지가 있으므로 국회와 정부의 협조하에 적극적인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위험분담제ㆍ신속한 보험 급여 등재 등 필요=이렇게 고가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제약업계는 함께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난 2014년부터 실시된 위험분담제(RSA)다. 위험분담제란 대체 가능한 치료제가 없는 항암제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희귀질환 치료제를 우선 환자에게 공급하고 이 신약의 효능이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정부와 기업(제약사)이 함께 분담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과의 계약을 통해 치료제를 우선 환자에게 공급할 수 있고 기업은 신약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나중에 정부로부터 약값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문제점은 있다. 이 씨의 경우처럼 해당 치료제가 정부와 기업이 맺은 계약으로 위험분담제 혜택이 주어지다가 계약이 만료되면 환자는 약값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이에 이 의원은 “계약기간 만료로 인해 재정적 부담은 환자 몫이 되고 있는데 기존 환자에게는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적용해야 한다”며 “치료 효과가 뛰어나고 재정 영향이 큰 고가 신약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 체계를 효과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속한 보험 등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항암신약이 허가 후 보험에 등재되기까지 OECD 국가는 평균 245일이 걸린다. 반면 한국은 평균 601일이 걸린다.
이 같은 지적에 복지부는 신속한 보험 급여를 위해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허가-평가 연계제도를 활성화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전 적정성 평가를 실시하고 약가협상 기간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할 계획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 나오는 신약은 연구개발에 투자된 엄청난 비용 때문에 약값이 높게 책정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시가 급한 환자에게 치료제를 빨리 공급하고 싶은 건 제약사도 마찬가지지만 기업이기 때문에 신약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혁신신약의 가격을 어느 정도로 정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새로운 신약이 나올 때마다 이런 고민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