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어른들은 모르는 10대들만의 세계가 있다. 10대들도 또래친구를 만나 풋풋한 첫사랑을 시작하고, 그를 통해 성장한다. 1993년 ‘사춘기’를 시작으로 국내 브라운관의 청소년 드라마는 어른들이 원하는 10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교라는 정글 안에서 입시지옥을 살아내는 아이들, 그 안에서 싹트는 우정, 한두 명씩은 반드시 등장하는 반항아들의 개과천선. 그 과정은 착하고 순수하며, 어른들이 요구하는 방향에 맞춰 따뜻하게 그려졌다.
최근 첫 방송을 시작한 KBS2 ‘하이스쿨:러브온’은 청소년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안고 나왔지만, 드라마의 방향은 다소 달라졌다. 10대들의 일상 속에 스며든 감정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멜로가 중심에 섰다.
드라마 시작 당시 일부에선 ‘청소녀드라마’가 사랑을 다룬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사실이나, 안방 정서에 맞게 풋풋하고 산뜻한 10대들의 멜로를 그리는 ‘하이스쿨:러브온’의 수위는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몇 편의 해외 10대 드라마에 비한다면 순진하고 동화같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지 모른다. 미국과 영국의 청소년 드라마는 ‘하이스쿨:러브온’을 포함한 그간의 수많은 10대 드라마와는 너무도 다른 지점을 바라본다. 그 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나 거대한 소비문화를 보여주거나, 기존의 청춘드라마를 완전히 비튼 음울한 절망을 보여주며 10대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 풋풋한 10대 로맨스 ‘하이스쿨:러브온’=KBS의 2014년도 버전 청소년드라마 ‘하이스쿨:러브온’은 기존의 드라마들이 표방해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 서있다.
10대들의 성장을 그리며 가장 중심으로 끌어온 것은 아이들의 사랑과 감정이다.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10대 아이들의 감정을 담으며 그들의 성장담을 그리겠다는 드라마다. 제목에서처럼 산뜻하고 풋풋한 멜로가 중심에 들어온 ‘하이스쿨:러브온’은 아역배우 김새론과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멤버들이 등장해 10대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멜로가 중심이 된 드라마에는 심지어 판타지 요소까지 더해졌다. 위기에 빠진 남학생을 구하려다 인간이 되어버린 천사가 바로 김새론이 만들어가는 이슬비 캐릭터다. 천사는 고등학생의 집에 머물고 함께 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한국의 고교생활을 체험하고, 그들의 고민을 공유한다. 학교폭력과 입시지옥에 찌든 청소년드라마 대신 판타지가 더해져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멜로가 섞였다지만 드라마의 수위는 예쁘고 귀여운 수준일 것으로 비친다. 인피니트 성열은 앞서 진행된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극중 스킨십은 많이 나오면 좋다”고 농담처럼 전하면서도 “가볍게 뽀뽀까진 괜찮지 않겠냐”고 말했다.
▶ 뉴욕 10대들은 이러고 노나? 화려한 ‘가십걸’=2007년 첫 번째 시즌을 시작한 미국 CWTV의 청춘드라마 ‘가십걸’을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모았다. 총 6개 시즌으로 2012년 방송이 끝난 ‘가십걸’을 통해 드라마에 출연한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레이튼 미스트, 펜 바드글리, 테일러 맘슨, 체이스 크로포드는 전 세계가 열광한 스타가 됐다.
‘비버리힐스 아이들’, ‘디 오 시’를 잇는 ‘가십걸’은 사실 드라마라기 보다는 한 편의 스타일북을 연상케 한다. 상류층 10대들의 문화와 성장기를 보여주던 이 드라마는 ‘10대 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뉴욕 상류사회를 향한 동경과 조롱을 동시에 담아냈다.
내용은 단순하다. 뉴욕 사립고에 재학 중인 4명의 주인공은 날이면 날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벌이며 풍족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물질적인 풍요만큼이나 황폐하다. 호텔상속자의 딸 세레나는 아버지 호텔에서 마티니를 홀짝이며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세레나의 절친 블레어는 뉴욕과 파리를 제 집처럼 오가는 재력가의 딸이면서 질투의 화신이다. 어차피 미래가 보장된 청춘이기에 그들에겐 소비조차 갈망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자기 것을 빼앗기는 순간 전쟁은 시작된다. 남자친구의 경우가 그렇다. 블레어는 자신의 남자친구 네이트가 세레나를 좋아하게 되자 인터넷, SNS를 적극 활용해 세레나를 향한 악랄한 소문을 퍼뜨린다.
뉴욕 부잣집 아이들의 일상 역시 누군가에 의해 인터넷과 SNS로 퍼져간다. 할리우드 톱스타에게 관심을 가지듯, 상류층 소녀들의 일상이 공유되고 조롱받고 동경을 불러오기도 한다. 제목이 ‘가십걸’인 이유다.
사실 가십걸은 뉴욕 상류층 10대들의 삶을 다루지만, 평범한 뉴욕 고등학생들의 삶을 그렸진 않았다. 다만 보여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화려한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해 그들의 패션으로 이목을 돌린다. BGM의 인기도 상당했다. 드라마는 40분 분량 내내 현지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최신팝들이 쏟아져 나와 시청자들의 귀를 현혹했다.
▶ 추락하는 데엔 날개가 없다…적나라한 10대의 일상 ‘스킨스’=2007년 영국 E4 채널에서 첫 방송된 ‘스킨스’는 2013년까지 7개 시즌을 선보이며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킨스’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같은 시기 출발한 미드 ‘가십걸’조차 ‘스킨스’에 비한다면 속물적이긴 해도 순진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고까지 비친다. ‘비버리힐스의 아이들’로부터 시작한 미국의 ‘청춘물’을 일거에 조롱하듯 영국의 청춘드라마는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10대들의 방황을 통해 그들만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렸다.
‘대마초를 싸는 종이’를 뜻하는 ‘스킨스’는 영국 소도시 브리스톨에 살고 있는 16~18세 가량의 10대들의 일상을 담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낙오한 드라마 속 아이들은 매일밤 클럽에서 환각파티를 즐긴다. 술을 물처럼 들이 붓고, 대마초와 마약에도 손을 댄다.
그들의 청춘은 술과 마약, 섹스로 얼룩져 소비된다. 황폐하고 피폐하기 그지없는 10대들의 하루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위험한 질주만 계속한다. 하지만 그들의 음울한 방황은 막나가는 일상을 그리는 데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가정의 불행(드라마 속 부모에게 그들의 자녀는 무관심이나 핍박의 대상이다)과도 맞닿아 있는 아이들의 방황에선 저마다 희망의 씨앗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담겼다. 가족갈등, 동성애, 자살 등의 위험한 소재에 사랑과 우정, 꿈을 향한 갈망이 공존한다.
거식증에 시달리는 캐시(한나 머레이)의 삶은 외딴 곳에 떨어진 날개 잃은 어린새와 같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아 정신증을 앓는 캐시가 되뇌이는 말은 “내가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였다. 그런 캐시는 때로는 어눌한 시드를 만나 사랑을 하고 서로의 나약한 날개를 보듬는다.
술과 마약에 절어 사는 엄마를 둔 토니(니콜라스 홀트)와 에피(카야 스코델라리오)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엄숙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눈을 속이기 위해 겉은 모범생으로 위장하지만, 남매의 선택은 언제나 화려한 밤거리다. 에피는 집에서는 조신한 학생, 밤만 되면 화장실 창문을 통해 클럽으로 직행하는 날라리다. 토니는 천하의 바람둥이에 못된 고딩이면서도 여동생 에피에게만은 자상한 질책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다.
미국에서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스킨스’를 리메이크한 미국 MTV의 동명 드라마는 첫 방송 후 ‘막장’ 논란이 일었다. 10대 청소년들을 섹스, 마약, 술에 중독된 충격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 심지어 ‘학부모 방송감시 위원회(The Parents Television Council)’는 “청소년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이 드라마가 아동포르노법에 저촉된다”며 법무부와 연방의회에 공문을 보내 제재를 촉구하기도 했다.
▶ 10대 문제아들이 초능력을 가지니…과격한 ‘미스핏츠’=문제아들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까. 영국판 10대 드라마에도 ‘하이스쿨:러브온’처럼 판타지 요소가 가미됐다. ‘하이스쿨:러브온’이 인간 소년을 구해준 천사가 지상에 내려온 동화같은 순수 판타지를 보여준다면 ‘미스핏츠’가 그리는 상상력은 상당히 과격하다.
2009년 첫 방송돼 현재 시즌5까지 나온 영국 E4 채널의 ‘미스핏츠’는 사회봉사 활동을 명령받은 불량 청소년들이 번개에 맞아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문제아들의 일탈에 초능력이 더해지자 기상천회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미드 히어로즈와 10대 드라마 스킨스가 절묘하게 뒤섞인 모습이다. ‘미스핏츠’가 부적응자라는 의미다.
저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6명의 10대들은 우리로 치자면 소년원에 입소해 쓰레기 줍기, 페인트칠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데, 사회봉사 첫 날 우박과 함께 떨어진 폭풍과 번개를 맞은 뒤 서로 다른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문제아들이 주인공인 탓에 아이들은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드라마에선 비속어와 욕설이 난무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만난다. 화려한 포장 대신 이면을 파헤치는 영국식 깊이에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지자 전혀 다른 청소년드라마로 태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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