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어르신-대학생 홈쉐어링’ 1기가정 커플 사연 -박태환(67)-최윤슬(23) 씨 “문화차 극복하니 생활 공유”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우리 ‘귀딸이’랑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젊어진 느낌이에요.”

무려 44살이나 어린 ‘동거인’과 한지붕 아래 살고 있는 박태환(67ㆍ여) 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동거인 최윤슬(23ㆍ 여) 씨의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매사에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박 씨의 말에선 친딸에 대한 정같은 게 묻어 나온다.

박 씨가 최 씨와의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6월1일. 두 사람은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이 추진한 ‘어르신-대학생 홈쉐어링’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어르신-대학생 홈쉐어링’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제공하는 대신, 혼자 사는 노인의 생활을 돕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박 씨와 최 씨는 1기 홈쉐어링 가정이다.

박 씨는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가면서 큰 집에 혼자 살게 되자 큰 아들이 “빈 방에 하숙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며 홈쉐어링과 함께 최 씨와 인연을 맺었다. 다리 수술 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사람 얼굴만 봐도 병이 씻은 듯이 나을 것 같았다. 이미 본가에서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최 씨는 어르신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서도 학교 근처에서 살 수 있어 홈쉐어링에 참가했다.

서대문구 ‘어르신-대학생 홈쉐어링’ 1기 가정, 박태환 씨와 최윤슬 씨 커플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서대문구 ‘어르신-대학생 홈쉐어링’ 1기 가정, 박태환 씨와 최윤슬 씨 커플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주거와 더불어 ‘문화’까지 공유하는 게 홈쉐어링”이라는 박 씨의 말처럼, 처음에는 상반된 ‘문화’를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최 씨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서 물기를 닦지 않아 박 씨가 화장실 바닥에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박 씨는 “나중에 ‘귀딸이’에게 ‘노인들이 젖은 화장실 바닥에서 가장 많이 미끄러진다’고 귀띔 해주니 그제야 화장실 사용 후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청소와 설거지 등 생활 전반에 대한 규칙을 정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만큼 어느 한 쪽에 다른 쪽이 일방적으로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박 씨는 “나에게 당연한 것이 타인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며 “항상 합리적인 선에서 함께 규칙을 정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날 일이 생기면 “내일 7시에 일어날 건데 우리 아침은 몇 시에 먹을까”라고 조율을 했다.

더디지만 하나씩 맞춰 나가다보니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박 씨가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최 씨는 수저와 물잔을 놓고, 밥을 푼다. 둘이 같이 쓰는 물건은 눈에 잘 띄는 곳이 두고 쓴다.

서로의 호칭도 어느새 ‘귀한 딸’의 준말인 ‘귀딸’과 ‘이모님’이 됐다. 호칭만 이렇게 부를 뿐 아니라 두 사람 사이도 실제 딸과 이모같이 됐다.

얼마 전에는 최 씨의 응원에 힘입어 박 씨가 시민대학의 글쓰기 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받아주지도 않을텐데 무슨 글쓰기 지도사냐”고 박 씨가 주저하자, 최 씨가 “노인대학이나 복지관에서 가르치면 된다”며 용기를 북돋아준 것. 박 씨는 최 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글쓰기 지도사 수업을 듣게 됐다.

박 씨는 “귀딸이 덕에 오랜 꿈에 도전하게 됐다”며 “귀딸이를 보면 외국에 나가 살던 딸이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최 씨도“자꾸 챙겨주시려 해 죄송하다”면서도 “이모님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만큼 오래 오래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