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한국형 양적완화’가 시작됐다
저를 바라보는 인식은 오랫동안 부정적이었습니다. 저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을 가리키는 고리대금업자는 사악한 사람으로 그려지기 일쑤였죠.
하지만 요즘 제가 인류의 구원자가 돼 버렸습니다. 돈 없는 사람에게 저를 빌려주라고 권력자들이 재촉하기도 하고, 세계 각국이 저를 마구 풀어대기도 한답니다. 돈이 돌아야 한다나 뭐라나. 하여튼 제 주가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사실 금융(金融)은 인류가 풍족해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증명하고 있죠. 적재적소에 자금이 공급되면서 한국 경제가 우뚝 서게 된 것이죠. 더욱이 자본주의는 금융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금융은 예금과 대출에서 채권ㆍ주식 그리고 파생금융상품으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국가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동맥이 막히면 살 수 없듯, 돈이 부족하면 거래가 위축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됩니다. 넘치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죠.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장기 경기 침체로 사람들이 생필품 외에는 그 무엇도 잘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살만한 것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돈이 돌아다닐 수 없는 여건이 돼 버렸죠.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은 그저 떼먹히지 않을 곳으로 흘러가거나 은행 금고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이 막혀 버린 셈입니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은 저를 풀어대기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책금리가 이미 제로(0)여서 쓸 수 있는 방법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ㆍQE)’ 밖에는 없었으니까요. 제가 풀리면 금리가 낮아집니다. 반면 저축에 대한 유인은 약해지죠. 기업들이 저를 빌려다 쓰는 비용은 떨어집니다. 결국 지출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세계 각국은 국공채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저를 시중에 공급했습니다. 물량이 한정돼 있기에 국공채 가격이 올라가면서 이자율은 떨어졌죠. 이렇게 되면 저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돈은 항상 고수익을 좇습니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저의 생리죠. 좀더 높은 수익을 위해 주식시장 등으로 갈 수밖에요. 주가 상승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떨어뜨려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를 내게 됩니다. 고용증가로도 이어지게 되죠. 이게 바로 양적완화의 선순환 구조입니다.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올라야 하는데, 물가 상승폭은 미미했습니다. 풀린 돈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이지머니(Easy Money)를 줬는데도 말입니다. 오죽하면 세계 각국 정상들이 물가상승을 외쳤겠습니까. 미국은 결국 세차례나 양적완화를 시행했습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은 물론 일본 아베정부까지 가세했습니다.
한국도 최근 새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한국형’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선진국의 양적완화와 다릅니다. 그래서 ‘한국형’이란 수식어가 붙었죠. 한국은 재정보강과 금융지원이 주요 내용입니다. 또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2.50%여서 인하 여지가 아직 있습니다. 금리정책을 쓸 수 있다는 얘기죠.
저를 풀어댄 효과는 꽤 있었습니다. 중앙은행이 위험자산을 직접 사들이며 금융시장을 안정시켰고, 금리를 떨어뜨려 추락하는 경기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잘못 사용하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돈은 무척 자유롭습니다. 이 나라 저 나라 돈으로 바뀌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니고 있으니 말이죠. 투기세력입니다.
통화가 과다하게 증가하면 물가는 반드시 오르게 됩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 ‘버블(거품)’이 형성되기 마련이죠. 글로벌 유동성이 석유 등 원자재나 곡물 등으로 흘러가게 되면 변동성이 커지게 됩니다. 신흥국에 들어갔다가 빠지면, 거품이 생겼다가 꺼지는 것처럼 그 나라는 휘청거리게 되죠. 중앙은행의 자산 손실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환율을 출렁거리게 만들기도 하죠. 이런 여러 부작용을 아는데도 저를 찍어낸 것은 그만큼 위기탈출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버블, 한국인들도 무척 경계하는 말이죠. 그렇다면 버블은 왜 생길까요. 날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투자 기회, 노동의 종말이란 말이 실감나는 취업의 기회, 미래를 보장해 줄 투자 수익에 대한 갈증 등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버블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버블이라도 부여잡고 부(富)를 증식해 돈을 벌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까요.
이제 미국은 달러화를 거둬들이려고 합니다. 미국이 출구전략인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란 말을 언급할 때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는데, 저의 목줄을 확 죌까봐 사람들이 걱정해서죠. 돈의 가치를 올리는 금리 인상도 예고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들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나서게 되면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경제적 약자만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경제는 심리입니다. 이런 경제활동의 매개는 돈입니다. 돈은 신뢰가 생명입니다. 일정한 가치가 유지돼야 한다는 겁니다. 저에 대한 ‘신뢰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선택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