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의 일기장을 들춘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두고 ‘훔쳐본다’라고 표현한다. 일기(日記)는 개인의 기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본인이 먼저 일기를 꺼내어 들추고, 대중은 그것을 보고 즐기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은 자신이 공부하거나 일하는 모습, 친구들과의 수다, TV를 보는 모습 등까지 적나라한 생활상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때로는 노트에 자신의 상태를 써내려가듯 현재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영상으로 기록하는 공개일기 ‘브이로그(VLOG)’다. 이 트렌드에 발맞춰 최근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가 개인적 영상 기능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브이로그'의 매력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가능성은 얼마나 큰지 미래의 시장을 점검한다.-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오늘은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요. 특별한 날이라 새로 산 화장품을 사용해보려고요” “저는 자기 전에 이렇게 향초를 켜고 노래를 틀어 놓는 편이에요. 이런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거든요”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제3자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말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브이로그 영상에는 당사자가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배경음악과 폰트, 자막 스타일, 말투부터 시작해 언뜻 보이는 인테리어와 소품, 친구들과 만나 방문하는 카페의 분위기, 행동의 속도 등 수많은 것들은 브이로거의 취향과 생활패턴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 “똑같은 일상·다른 기록” 브이로그와 SNS, 어떤 차이 있을까?지난해부터 브이로그를 시작한 유튜버 윤이(yun e)는 “단순히 나의 일상이 나태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찍어보고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고 브이로그를 시작한 계기를 전했다.역시 지난해부터 ‘선희의 꿀로그(SunnyHoneyLog)’라는 채널 이름으로 브이로그를 올리고 있는 유튜버 선희는 “영상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특별히 콘셉트를 잡은 건 없었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 이선희의 하루들을 기록하자는 생각이었다”면서 “다만 최소한 내가 다시 열어보고 싶은 영상일기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다시 볼 때 필요 없을 것 같은 장면은 잘라내고 잊고 싶지 않는 장면들은 넣는다는 생각으로 편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브이로그를 하는 목적은 사적인 영역을 드러내고 싶어서가 아니다. ‘기록’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특히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떠한 개입 없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고, 기록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브이로그에서는 그 기록의 내용이 일상 자체이기 때문에 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들이 노출된다.그런 면에서 브이로그는 기존 SNS와도 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사용하는 제품, 여행간 곳, 맛있는 음식, 기억하고 싶은 장소, 읽고 있는 책 등 자신과 관련된 것들을 올려왔다. 다만 브이로그는 일상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편적인 한 조각을 담아내는 SNS와 가장 큰 차이를 갖는다. 예를 들어 카페를 찾아갈 때 SNS에서는 카페의 인테리어나 음료 등을 찍은 사진과 그에 대한 감상을 풀어 놓는다. 그런가 하면 브이로그에서는 집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길을 걸어가고, 지하철을 타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앉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오래 전부터 브이로그를 만들고 싶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이지영(28·여) 씨는 브이로그 콘텐츠를 보면서 직관적으로 내용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SNS와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글이나 사진을 게재하는 것과 달리 브이로그는 내 손으로 만든 구체적인 결과물이 있기 때문에 더 보람을 느낄 것 같다”면서 “정제되었으면서도 더 살아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브이로그를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고 밝혔다. 유튜버 선희는 “사진은 텍스트로 부연설명을 해야 하는데 영상은 꾸밈없는 표정과 말투와 배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어서 좋다. 영상에서도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척, 맛이 없는데 맛있는 척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티가 난다. 그만큼 영상은 솔직한 매체이고 그래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어 “인스타그램에서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만 업로드 대상으로 여겼는데, 브이로그를 시작하고 평소 일상을 찍다보니 모든 것에 촬영 대상이 됐다. 직장에서 커피를 타는 모습이나, 사무실에서 타자를 치며 일하는 모습 등을 모두 촬영하는 것이다”라면서 “브이로그를 통해 일상의 모든 순간이 특별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이처럼 브이로그로 자신의 생활을 써내려감으로써 생기는 나름의 재미도 있다. 촬영을 하고, 잘라서 이어 붙이고, 자막을 넣으며 편집하는 등 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반복적인 일상도 특별한 하루로 다가온다.
■ 브이로그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시작하는 브이로그이지만, 오히려 브이로그로 인해 생활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가장 기본적이자 필수적인 변화는 촬영기기를 언제 어디서나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브이로그는 화면을 끊지 않고 쭉 보여주는 롱테이크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짧은 영상을 콜라주처럼 이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이 촘촘히 들어간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소스 영상이 필요하다. 유튜버 윤이는 브이로그를 시작한 이후 달라진 모습에 대해 “어떤 곳에 가더라도 꼭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었는데 그동안에도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딘가를 가면 꼭 영상을 찍고 있더라. 1년 만에 달라진 일상이고 새로 생긴 저의 버릇이다”라고 말했다.유튜버 선희 역시 “브이로그를 촬영하기 시작하면서 어딜 가든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게 됐다. 휴대전화의 보조배터리를 챙기는 것처럼 ‘외출시간이 길고 촬영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싶을 때는 배터리나 메모리카드를 하나 더 챙기기도 한다. 나에게는 카메라가 핸드폰처럼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이 됐다”고 설명했다.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은 단순한 소지품의 차이를 뛰어 넘는다. 어떤 앵글을 취해야 구독자들이 좀 더 보기 편할지, 주변에 보이는 것들에 걸리적거릴 만 한 것들은 없는지 등 촬영을 위한 환경도 고려하게 되는 행동의 변화도 일으킨다. 유튜버 선희는 “처음에는 아무 곳에서 일단 찍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영상으로 보면 역광이 심해서 얼굴이 어둡게 보이기도 하고, 각도가 이상해서 실제로 내가 봤던 것만큼 보기 좋게 나오지 않기도 하더라”면서 “그런 결과물을 보다보니 이제는 어디엔가 가면 카메라 놓기 좋은 자리를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됐다. 너무 어둡지 않은 장소, 배경에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벽이나 창가자리 등을 선호한다”고 밝혔다.이어 “브이로그를 시작한 뒤 방 구조를 바꾼 적이 있는데 그때 카메라를 주로 어디에 두게될 지, 뒤 배경이 어떻게 보일지 고려해서 가구배치를 했다”면서 “브이로그로 내 일상을 기록하지만, 브이로그를 기준으로 내 생활환경이 변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일상의 편집] ①‘나혼자산다’·‘효리네민박’...결코 낯설지 않은 브이로그[일상의 편집] ②‘기록’ 위한 브이로그, 일상의 일부가 되다[일상의 편집] ③“개인의 기록→모두의 공감” 브이로그에 빠져드는 이유[일상의 편집] ④내가 나를 감시한다? 그럼에도 즐거운 약간의 용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