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동민 기자] 영화판에서 소녀의 ‘각성’은 더없이 훌륭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가장 나약한 존재가 더없이 강력한 존재로 변모한다는 점에서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대상에서 주체로, 또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어떤 사건을 통해 성장 또는 폭주란 이름으로 이뤄지는 소녀의 극단적 캐릭터 변화는 그 자체로 관객을 바짝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을 본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 통쾌한 청량감 또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감이다. 그리고 영화 ‘마녀’는 전자로 시작해 후자로 향하는 경우다.‘마녀’의 서사는 알 수 없는 시설에 갇혀 지내던 열 살 남짓 소녀가 그 곳을 탈출하면서 시작된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한 시골 마을에 쓰러진 소녀는 근처에 사는 노부부에게 발견돼 보살핌을 받고 그 집의 수양딸이 되어 ‘자윤’이란 이름으로 지내게 된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고, 자윤(김다미)은 밝고 사랑스런 여고생으로 자라 있다. 그는 상금을 받아 효도하기 위해 서울에서 열리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절친 명희(고민시)와 함께 출연하고, 이 과정에서 수상한 이들을 잇따라 마주하면서 신변을 위협받는다.
자윤의 과거에 얽힌 비밀은 영화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주요한 장치다. 그 중심에는 정부 차원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어 온 뇌 과학 연구가 있다. 어린 아이들의 뇌를 개조해 ‘초인’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영화는 ‘마녀’라는 거창한 제목을 통해 희미한 전사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현재 베일에 싸인 자윤의 초인적인 힘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종종 이어지는 자윤의 두통, 부모와 절친만 아는 그의 ‘마술’ 따위를 통해서다. 그렇게 어슴푸레하게만 보이던 자윤의 과거는 그를 쫓는 세력들의 등장으로 현재에 다시 소환된다. 영화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윤과, 자윤의 현실을 다시 과거로 잇는 이들 간의 대결이다.“저한테 도대체 왜 이러세요”라고 ‘추격자’들을 향해 부르짖던 자윤은 어느 순간 각성한다. 덩치 큰 성인 남성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주저없이 그들의 숨통을 끊는다. 동시에 그가 ‘자윤’으로서 일궈 온 10년의 ‘일상’은 과거로 회귀한다. 노부부의 금지옥엽 착한 딸이었던 소녀가 돌연 냉혈한의 살인병기로 변모하는 셈이다. 자윤을 쫓는 미스터 최(박희순)와 귀공자(최우식)를 향했던 공포감은 어느 순간 그들보다 강력한 자윤을 향한 공포로 옮겨간다. 말하자면 ‘마녀’가 조성하는 공포는 악이 아니라 힘에 의한 것이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힘 말이다.
결국 ‘마녀’는 메가폰을 잡은 박훈정 감독의 전작 ‘신세계’ 속 설정을 무대와 인물만 바꿔 적용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선과 악은 없이 강자와 약자만이 존재하고, 약자를 도태시키고 살아남는 강자야말로 그 세계의 중심에 선다. 영화 말미 피비린내 나는 클라이맥스를 거친 자윤에게서 느껴지는 압도감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다. 자윤은 자신을 둘러싼 굴레를 벗어던지고 비로소 각성한 히어로이거나, 자신을 유린한 폭력에 인간성 따위는 잃어버리고 폭주한 역대 최강의 ‘빌런’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더 이상 스크린 밖 관객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소녀’가 아니란 점이다. 27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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