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향년 45세로 별세한 고 박현성 관장은 자신의 별명 ‘불사조‘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다.
충남 대천이 고향인 박현성은 어린 시절 악동에서 또래 최고의 아마추어 복서, 굴절 많은 대학 및 프로복서 생활, 그리고 조폭 보스 등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박현성 관장은 소년체전 우승(83년),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아마복싱 유망주였다. 그는 86년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한 후 좌절했다. ‘한국 프로복싱의 대모’ 심영자 씨 휘하에서 잠깐 프로생활을 한 뒤 20대 초반의 나이에 고향 대천에서 조직폭력배 보스로 밤의 황제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안산에서 반대파의 테러에 양쪽 아킬레스건을 잘렸고, 실의에 빠진 그는 삶을 마감하려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30여 차례가 넘는 수술 끝에 의학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재활에 성공했다. 그 뒤 밤 세계를 완전히 청산한 뒤 선수로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화상후유증으로 몸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직접 종합격투기 대회 스피릿MC와 입식격투기 대회 코마GP 등에 출전, 3차례나 4강에 들며 격투기계를 놀라게 했다.
4~5년간의 격투기 현역 파이터 생활을 뒤로 한 채 2000년대 후반부터는 지도자의 길에 전념했다.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의 실제 모델이었던 서철과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불리는 여성복서 민현미 등이 그를 거쳐간 제자들이다.
박현성 관장은 사망하기 불과 며칠 전인 7월 20일에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제자들에게 인생 전반과 격투기에 대해 조언하는 등 평소와 다름 없이 열정적인 지도자의 모습 그대로였기에 갑작스런 그의 사망은 더 가슴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