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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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가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을 하겠다는 파격적인 개방성은 국민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청와대 국민청원은 단순한 창구를 넘어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하고자 한다. 사람의 교류가 있는 곳에는 다양한 감정과 심리가 뒤섞일 수밖에 없는 법. 글이 홍수처럼 차고 넘치는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어떤 불길이 어떻게 타오르고 있을까. -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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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1. 최근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이 세월호 사고 당시 보도화면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곧바로 프로그램 폐지 청원이 올라왔고, MBC 측은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2. 하루가 멀다 하고 ‘폭행’ ‘갑질’과 관련한 내용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오르내린다. 이는 곧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등장한다. 특히 ‘다산 신도시 실버택배 갑질 논란’은 동의 20만 명을 넘어 답변대기 청원으로 올랐다.이 이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슈가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분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이 함부로 다뤄진 것에 함께 분노했다.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끔찍함을 함께 마주했고, 비상식적인 갑질 논란에 다같이 일어섰다.■ 공감의 뿌리에 숨어 있는 ‘분노’현재 국민청원은 익명제로 운영되고 있다. 섣불리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면 굳이 익명을 빌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국민청원 게시판도 보면 부족함과 부당함, 불합리함 등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여의도 성모병원 뇌건강센터 나해란 교수는 “국민청원 게시판이 실명제였다면 이렇게까지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익명제라는 원칙은 사람들이 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공감의 배경 중 하나인 ‘분노’가 피어올랐다는 것이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나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분노할 만 한 글이 많이 올라온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분노’라는 감정에 공감한다는 거다”라면서 “‘슬프다’ ‘착하네’ 등의 반응으로 끝나는 감정은 단편적인 공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분노는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비슷한 일을 겪거나 마음에 품고 있는 일들에서 비롯된다. 데이트 폭력, 갑질 등처럼 말이다”라고 국민청원을 둘러싼 심리를 짚었다.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이런 분노 방향이 사연 그 자체가 아닌 ‘약자를 부당하게 대하는 강자’를 향해 있다고 봤다. 최 원장은 청원 글에 동의하는 심리에 대해 “약자에 대한 동정심의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강자에 대한 분노가 강하다. ‘약자가 이렇게 피해를 받았는데 사회가 무관심하니 도움을 달라’는 게 아니라, 약자에 피해를 입히는 기성세력과 조직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최 원장은 “그런 측면에서 청원에 동의를 하는 행위는 청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공감한다는 의미보다 대리만족을 느끼는 일종의 보복심리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분노를 집단 투사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이런 분노를 거친 공감은 문제 제시와 해결을 위한 좋은 주춧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두운 측면이 없는 건 또 아니다. 감정의 일부인 ‘분노’가 청원자를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청원 글이 얼마나 분노(공감)를 일으키며 화제성을 모으느냐에 따라 그 중요도가 순식간에 커지고 작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곧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닌 한계점이 된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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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성이 관건? 끝없는 문턱에 부딪히는 사람들최근 오모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의료사고 보상법 기준 변경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아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환자나 보호자 동의 없이 임의로 신장을 제거당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 씨의 딸에게 자세한 정황을 들어봤다. 맨 처음 오 씨의 가족은 의료변호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병원에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 돌아온 대답은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이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병원에서 순순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 씨의 딸은 여러 언론에 사건을 제보했으나 별다른 회신은 없었다. 그는 “우리 입장에서는 분개하고 심각한 일이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워낙 이런 일이 많다보니까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고민 끝에 오 씨의 가족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국민청원’이었다.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처지인 국민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국민청원을 올린 것도 있다. SNS에 글을 올리자니 너무 가벼운 이슈로 치부될까 걱정도 됐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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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글을 올려 받은 청원동의는 약 2000여 명. 청원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모인 숫자임을 생각하면 꽤 많은 동의로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은 달랐다. 오 씨의 딸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아 500~1000명까지는 어떻게든 동의 수가 잘 올라간다. 그런데 1500~2000명을 넘는 게 고비다. 그 정체를 넘어 더 많은 동의를 얻으려면 어딘가에 노출이 돼 화제를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공론화가 되는 건 환자 본인도 원치 않으셨고, 또 그럴 환경도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청원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20만 명 동의를 얻기에는 벽이 너무 높았다. “아쉬운 점은 그거예요. 저희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의 청원을 보면 다들 의료법 개정을 원한다는 목소리거든요. 더 이상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여러 개의 청원이 올라와 있어도 결국엔 하나의 이슈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좀 더 자극적이거나(심각하거나) 화제가 된 글들만 주목을 받아요. 최근에도 한예슬의 의료사고 사건이 터지면서 저희 글도 주목을 받나 했는데, 또 이슈가 금세 훅 꺼지더라고요. 국민청원에도 ‘물타기’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 “소외감 느끼는 청원 없어야”국민청원에는 주로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옳지 않은 일의 진상을 규명하는 등의 글이 올라온다. 어디에선가 결핍과 차별 등을 느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돌파구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또 다시 넘을 수 없는 문턱에 가로막힌다면 어떨까? 이같은 역차별은 국민청원의 순기능이 동시에 역기능으로 작용한 결과다.이와 관련해 최명기 원장은 관심을 받는 청원 글에도 조건이 있다고 했다. 최 원장은 “첫째로는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스토리에 있어 약자가 갖고 있는 권력이 무자비하게 짓밟혀야 한다. 자극적이라기보다 공감하기 좋은 형태여야 한다는 거다. 영화도 수많이 나오지만 잘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들이 있듯이, 수많은 청원 사이에서도 경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최 원장은 “특정 청원의 동의가 얼마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 혹은 다른 쪽으로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이 있다면 해당 청원의 동의수가 더 빨리 올라가는 것도 있다. 이런 일들은 청원이 올라오기에 앞서 이미 여러 곳에서 갑론을박을 이루던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원이 이뤄지고 난 그 후가 보도되는 경우는 많이 없다”면서 청원 게시판의 치우친 화제성을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이슈가 되지 않는 청원은 밀릴 수밖에 없다.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청원이 관심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거다. 그런 청원들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바꾸는 세상] ①이슈의 중심에서 ‘국민청원’을 외치다[국민이 바꾸는 세상] ②청와대 국민청원의 현주소 [국민이 바꾸는 세상] ③‘국민청원’ 둘러싼 공감의 이면[국민이 바꾸는 세상] ④청와대 국민청원, ‘내일’을 위한 오늘의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