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TAPAS=나은정 기자] “여기가 플리마켓이에요? 그냥 노점들 모아놓은 거 같은데…”
‘힙’한 카페와 펍, 맛집이 즐비한 홍대-합정-상수 거리, 요즘 부쩍 눈에 띄는 건 ‘플리마켓’을 홍보하는 입간판과 현수막이다. 공원이나 건물 야외 귀퉁이 한켠에 수십 명의 셀러들이 모여 테이블을 펼쳐 놓고 악세서리나 향초, 손수 제작한 수공예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합정의 한 플리마켓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그곳이 “예쁜 게 많긴 하지만 한강에서 열리는 야시장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유럽여행 가서 봤던 플리마켓은 잊어라 파리의 생투앙, 스페인의 엘 라스트로, 영국의 포토벨로 등 바다 건너 유럽엔 부러울만큼 다양하고 앤티크한 상품이 가득한 플리마켓이 있다. 고미술품과 고가구, 중고서적과 음반, 빈티지 옷과 식기, 인테리어 소품 등 ‘보물’이 차고 넘친다. 그 나라의 전통과 소소한 일상까지 엿볼 수 있는 해외의 플리마켓은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다. ‘벼룩(flea)’이 나올 만큼’ 오래되고 안 쓰는 물건이지만 삶의 히스토리가 묻어나는 쓸 만한 것들을 가지고 나와 사고팔거나 교환한다.
그러나 국내의 플리마켓은 상황이 다르다. 서울의 대표적인 플리마켓으로 알려진 홍대앞 예술시장과 희망시장, 합정ㆍ이태원 거리의 플리마켓들, 명동 성당 지하광장의 프랜드마켓, 대학로와 성수동에서 열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 마르쉐@ 등은 사실 전통적인 플리마켓이 아닌 수공예 작가들의 핸드메이드 제품이나 도시농부가 직접 키운 농산물 등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프리마켓’에 가깝다. 플리마켓 아니고 프리마켓
2002년 이래 17년째 열리고 있는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에서는 패브릭ㆍ펠트 소품과 금속ㆍ유리공예품, 손뜨개 인형과 에코백, 다육식물과 애견용품 등 다양한 수공예품과 디자인 제품이 거래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공예 시장인 희망시장 또한 수공예 전문 작가의 ‘작품’이 거래되는 문화 예술시장으로 골동품, 빈티지를 파는 플리마켓과는 거리가 멀다. 트렌디한 합정과 이태원 거리에 좌판을 벌인 수많은 플리마켓이나 명동성당 지하광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플리마켓 역시 의류나 악세서리, 핸드메이드 디자인 제품이나 수공예품이 주 상품이다. 대학로와 성수동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르쉐@’도 도시농부와의 직거래가 가능한 농부시장으로 직접 키운 농산물로 만드는 요리와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장터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플리마켓은 오히려 ‘힙’하지 않은 곳에 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아나바다 정신을 살려 손때 묻은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플리마켓은 일부 지자체가 주축이 돼 지역 내에서 개최되고 있다. 서초 토요벼룩시장, 수원시 육아ㆍ아동용품 플리마켓, 의정부 아줌마 플리마켓 등이 대표적이고, 작게는 아파트 입주민이나 온라인 상의 ‘맘카페’가 주최하는 플리마켓이 동네 곳곳에서 열린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대규모의 플리마켓은 광화문 희망나눔 장터나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 정도다.
건물주도 셀러도 ‘윈윈’이긴 한데…
관계자들은 이렇듯 2030세대가 몰리는 거리에 한국형 플리마켓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이 결국 돈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플리마켓 관계자는 “요즘 생기는 플리마켓들은 그 이름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야외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번개시장이 돼 버렸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플리마켓이 생겨나는 것은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건물주는 건물 내외 자투리 공간을 임대해 셀러 한 명(팀)으로부터 보통 1만원에서 5만원의 참가비용(자릿세)을 받는데, 평균 10팀의 셀러들만 모여도 앉은 자리에서 하루 수십 만원의 수익을 얻는다.
셀러들에게도 이득이다. 셀러 가운데는 주중에 공예품을 손수 만들어 주말 저녁에 판매하는 평범한 회사원도 있다. 투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전문 셀러의 경우에도 공방이나 개인 매장을 운영하지 않아도 온라인 판매뿐만 아니라 각지의 유명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플리마켓에 악세서리 셀러로 참여한 최모(27) 씨는 “백화점 팝업스토어도 열어봤지만 수수료가 비싸고,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는 고객이 실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플리마켓은 비용 부담이 크지 않고, 손님들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수공예품이나 디자인 제품을 만나볼 수 있어 편하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벼룩시장이 아닌 야외에서 열린 오픈마켓 같은 느낌이라 굳이 가보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이날 스물두 살의 딸과 함께 플리마켓을 방문한 이모(50) 씨는 “일반 매장엔 손님이 없으면 들어가기도 부담스럽고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플리마켓은 오픈돼 있어서 부담이 없고 독특한 물건도 많다. 다만 비슷비슷한 느낌의 플리마켓이 많아지고 있는 건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형 플리마켓, 새 ‘장’을 열다 ‘프리마켓’이 된 한국형 플리마켓들은 해외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작가’로 불리는 셀러들의 참여로 문화와 예술이 교류되고 생산자, 창작자, 소비자들의 대화와 연결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장’을 펼치고 있다. 노점상으로 여겨지던 홍대앞 프리마켓들은 창작 체험과 다양한 문화 공연이 더해지면서 홍대앞을 좀 더 문화예술지구로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 대학로와 성수동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 역시 단순히 농산물 직거래 시장이 아닌, 사람과 삶과 귀농과 먹거리의 이야기가 더해져 생산자와 소비자가 친구가 되는 마을 공동체가 돼 가고 있다. 이런 사례야말로 도처의 플리마켓들이 추구할 바 아닐까, 골동품이 없어도, 빈티지가 없어도 우리가 플리마켓에 가야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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