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에 남편은 좌불안석 -아내의 잔소리에 쉬지도 못해 -명절스트레스 힘들고 괴로워

[헤럴드경제=최원혁 기자] 설날과 함께 찾아 온 남자들의 ‘명절 증후군’. 요즘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예전 명절때에는 남자들은 그저 밤이나 깎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전을 부치고 튀김을 만든다. ‘아버지 세대땐 안그랬는데 이젠 명절만 되면 힘들고 괴롭다’는 불량(?) 남편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다.

▶누구편을 들어야 하죠?=눈치 없이 일찍 본가를 찾은 강모(33) 씨는 좌불안석이다. 음식장만을 하는 아내와 어머니. 둘 사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누구 하나 편을 들 수 없다. 평소 집에서 하던 설거지를 하려고 팔을 걷어 부치면 어머니의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앉아만 있자니 아내의 한숨소리가 가시방석이다. 어느 한 순간 편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답답한 마음을 핑계로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수도 없는 노릇. 강 씨는 처갓집에 가서 달달 볶일 생각에 등줄기에 땀이 난다.

▶아내와 다툰 후 ‘앗싸’를 외치다 =신혼 3년차 김모(29) 씨. 귀성 열차를 미처 구하지 못해 결국 운전대를 잡았다. 부산 본가로 가는 길, 차가 막히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잔소리가 여지없이 날라온다. 왜 열차표를 미리 못 구했냐부터 남들은 끼어드는데 왜 끼어들지 못하고 있냐까지….

장시간 운전으로 몸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아내의 잔소리를 묵묵히 참아야 했지만 결국 폭발했다. 김 씨는 장시간 혼자 운전을 하는데 ‘고생한다’는 말보다는 핀잔만 늘어 놓냐고 한마디 했다. 결국 돌아오는건 긴 침묵뿐…. 차내에 잔소리가 사라지자 김 씨는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처가집 가는 발길이 무거워 =사위 사랑은 장모라지만 첫째 사위인 최모(38) 씨는 발길이 무겁다. 최악의 교통체증을 뚫고 겨우 처갓집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눈치’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처가집 근처에 사는 처제네 가족들은 이미 와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장모님은 직접 말은 못하고 “둘째 사위는 벌써 도착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오냐”며 타박을 준다. 그리고는 손아래 동서와 직장과 월급 그리고 집이 비교가 되기 시작한다. 또 이번 명절엔 용돈으로 저울질 한다. 직장인의 월급 사정은 뻔한 법. 그것도 몰라주는 장모님. 신혼때 다정다감했던 천사표정의 장모님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혼자 있는것도 어렵네요 =대형증권사에서 근무하다 최근에 명예퇴직한 장모(42) 씨. 올 설엔 별다른 계획없이 혼자 집에서 TV나 볼 생각이다. 아내와 아들만 처갓집에 내려간다. 장 씨는 처가 식구들과 살갑게 지내는 사이도 아닌데다, 실직한 상태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 게 껄끄러워서 집에 남는 것을 택했다. 홀가분한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론 혼자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예전에는 ‘시월드(시댁)’에서 차례상 준비 등으로 등골 휘는 아내들이 겪는 고통이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최근엔 남편들도 실직이나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가족에서 소외돼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아이 양육이 외가 중심으로 이뤄지는 모계사회 경향이 강해진 점도 명절 부담으로 다가온다.

전문가들은 전통적 의미의 가정이 붕괴되고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명절 등 중요한 가족 행사에서 남편들이 겉도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가족들이 사소한 부분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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