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①에서 계속) [헤럴드경제=남민 기자] 맨 먼저 마주하는 것이 작은 연못이다. 작은 연못 두 개를 조성했는데 10여m 위쪽의 연못을 상지(上池), 그리고 이 입구의 네모난 연못을 하지(下池)라 한다.

이 연못은 계곡물을 나무통으로 연결해 상지로 받아들인 다음 수로를 만들어 하지로 흐르게 했고 하지에서 다시 계곡으로 빠져나가게 만들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양산보는 이 연못에 귀한 순채와 물고기를 키우며 낚시를 즐겼는데 놀러 온 하서 김인후가 이를 소재로 시를 지었을 정도다. 세상을 등진 선비가 산 속에 묻혀 정원을 꾸미고 낚싯대를 드리우니 얼마나 멋드러졌을까. 하지만 김인후는 ‘차마 물고기를 낚을 수 없었노라’고 노래했다.

소쇄원에 막 들어서면 만나는 연못 ‘하지’
소쇄원에 막 들어서면 만나는 연못 ‘하지’

이 연못에서 보는 건너편의 고색창연한 누각 광풍각(光風閣)은 그림 처럼 아름답다. 비오는 날 안개라도 휘감기면 영락없는 수묵화 운치다.

하지를 지나면 상지가 있고 그 옆에 원두막 처럼 생긴 정자가 있는데 ‘대봉대(待鳳臺)’다. ‘임금님을 기다리는 곳’인데 임금이 실제 이곳에 올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러니 양산보는 그 만큼 소중한 손님을 기다렸으며 그들이 오면 이곳에 맞아 담소를 나누던 일종의 ‘영빈관’이었던 것이다.

길 옆에는 예쁜 흙담장이 내원인 소쇄원과 외원인 생활공간을 구분지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정자가 주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는 달리 같은 공간에 마련한 것도 특이한 점이다.

손님을 맞이하던 대봉대
손님을 맞이하던 대봉대

이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사람 중 이웃 장성 출신의 김인후는 양산보와 자주 교유하며 ‘소쇄원48영(詠)’을 지었다. 이 48영은 소쇄원의 곳곳을 아름다운 시로 노래한 것으로 이 시에서 표현하는 곳을 마치 숨은 그림찾기 하듯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좋을 것 같다. 소쇄원 48영은 1548년에 지었으니 그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긴 것만으로도 귀중한 자료가 되겠다. 김인후를 비롯 송순, 정철 등 많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교유하며 훗날 가사문학의 싹을 발아했다.

담장이 꺾어지는 부분 벽면 두 곳에는 한자로 ‘애양단(愛陽壇)’과 ‘오곡문(五曲門)’이란 글을 써 놓았는데, 애양단은 찬바람을 막아주는 담장으로 그곳이 가장 따뜻한 담장이라 해 불렀으며 자신의 노모를 모시고 나와 볕을 쬐며 효도했다고 한다.

옆의 ‘오곡문’은 ‘다섯 구비의 계곡’이라는 의미와 주자(朱子)가 지은 무이구곡(武夷九曲) 중 오곡을 따온 말로 보고 있다.

‘애양단’과 ‘오곡문’ 글을 써놓은 담장. 주변에 동백, 매화, 복숭아나무 고목이 있다.
‘애양단’과 ‘오곡문’ 글을 써놓은 담장. 주변에 동백, 매화, 복숭아나무 고목이 있다.

이 주변에는 효를 상징하는 동백나무와 선비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심었고 또 장수를 기원하는 복숭아나무도 심는 등 정원수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다. 그러니 ‘단순한 나무’로만 보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겠다.

매화나무 옆 담장은 계곡을 건너면서 끝나는데 계곡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며 그 위에 담장을 쌓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전하는 말로는 양산보 선생이 제주에서 기술자를 데려와 축조했는데 450년이 넘도록 홍수에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얼핏 보면 투박해 보이는 돌 위의 담장이지만 돌 틈 사이에 과학이 숨어있다는 얘기다. 이런저런 사고와 부실공사로 사회문제가 되는 오늘날 후손들에게 이 ‘작은 장인정신’이 교훈으로 느껴진다.

계곡물 위로 쌓은 담장. 450년 동안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계곡물 위로 쌓은 담장. 450년 동안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곳의 작은 돌다리를 건너 왼쪽 길로 오르면 산비탈 담장에 ‘소쇄처사 양공지려(瀟洒處士梁公之廬)’라는 글씨로 양산보의 집임을 알려준다.

‘처사’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가장 불리고 싶어했던 호칭으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한 선비’를 말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학자, 선비여도 벼슬길에 오르면 처사로 불릴 수 없었다.

옛말에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 대제학(정2품 벼슬) 배출한 집안이 낫고, 대제학 보다 문묘배향자 배출한 집안이 나으며, 문묘배향자 보다 처사 배출한 가문이 가장 영예롭다”고 했다. 그러니 선비들이 가장 선망했던 호칭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떨까’ 잠시 생각케 하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처사로는 남명 조식(南冥 曺植ㆍ1501~1572) 선생을 꼽는다.

그 경사진 곳에는 오래된 측백나무와 주목이 눈길을 끈다. 앙상한 백골로 고사목이 된 키 큰 측백나무 옆에는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이 ‘오래된 정원’에는 오래된 나무 이야기가 무척 많다. 때마침 활짝 핀 철쭉 고목은 양산보 선생이 왜철쭉 분재를 선물받고 기뻐서 김인후 선생에게 자랑한 후 땅에 옮겨심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활짝 핀 철쭉. 선물받은 분재를 땅에 심어 고목이 되었다고 한다.
활짝 핀 철쭉. 선물받은 분재를 땅에 심어 고목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래쪽 계곡의 넓적바위는 광석(廣石)으로 누워 달을 바라보며 노래한 김인후 소쇄원 48영의 ‘광석와월(廣石臥月)’ 바위다.

오래된 소나무도 4그루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후계목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담양 소쇄원③에서 계속)

글ㆍ사진=남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