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디지털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 법(CLARITY Act)’에 대한 토론종결(클로처) 표결이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본회의 심의를 시작하려면 60표가 필요했지만 11표가 모자랐다. 지난해 7월 하원을 294 대 134로 통과하고 올해 5월 상원 은행위원회까지 넘었던 법안이다. 표결 직후 디지털자산 상장지수펀드(ETF)에서 하루 만에 6억달러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가자, 국내에서도 “미국조차 멈칫하는데 디지털자산은 아직 시기상조 아니냐”는 목소리가 고개를 든다. 그러나 부결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림은 전혀 다르다.
이번에 법안의 발목을 잡은 것은 시장구조 설계가 아니라 정치였다. 1년 넘는 협상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보상을 둘러싼 은행권과 업계의 대립이 이어졌지만, 막판 최대 쟁점은 공직자 윤리 규정이었다.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디지털자산 사업을 둘러싼 이해충돌을 막을 강력한 장치를 요구했다. 공화당은 공직자의 디지털자산 발행·후원을 제한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관련 지분 보유를 막는 635쪽짜리 최종 수정안으로 응수했지만, 민주당은 적용 범위를 대통령 가족까지 넓혀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 지형이 타협의 여지를 좁힌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표결은 법안의 최종 가부가 아니라 심의 개시 여부를 가른 절차 표결이었다. 법안은 폐기되지 않았고, 공화당 톰 틸리스 의원은 재표결의 길을 열어두기 위해 일부러 반대표로 돌아섰다. 이미 제정된 지니어스 법도 클로처 표결에서 한 차례 좌절했다가 몇 주 뒤 결국 상원을 통과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을 나누는 시장구조의 뼈대 자체는 쟁점이 아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더 주목할 것은 의회 밖의 움직임이다. 미국은 법안 하나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제도의 벽돌을 한 장씩 쌓고 있다. 통화감독청(OCC)은 지니어스 법 시행 규칙안을 내놓고 11월 최종안 확정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으며, 재무부와 연방예금보험공사도 후속 규칙 제정에 한창이다. 지니어스 법은 늦어도 내년 1월 시행된다. SEC는 8월 크립토 자산 발행 규제안을 제안했고, 이미 3월에 CFTC와 함께 증권법 적용 기준에 관한 공동 해석을 내놨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미국이 두 번째 계단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면, 우리는 첫 계단에도 발을 올리지 못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1년 넘게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정부안은 마련됐지만 이견이 남았다며 제출 시기를 거듭 미뤄왔고, 은행 과반 컨소시엄에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51% 룰’과 거래소 대주주 지분 상한 같은 쟁점은 여전히 제자리다. 최종 통과가 내년 상반기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클래리티 법 부결을 신중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내년 1월 지니어스 법이 시행되면 인가받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결제망을 파고들 것이다. 결제 인프라는 한번 선점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미국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완벽한 합의를 기다리지 말고 합의된 것부터 입법해야 한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먼저 떼어내 법제화했다. 부수적 쟁점이 산업 제도화 전체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 미국의 부결은 속도 조절일 뿐 방향 전환이 아니다. 방향조차 정하지 못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망이 아니라 결단이다. 시장을 조성할 골든타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원희 한국웹3블록체인협회장 법무법인(유한) 디엘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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