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순천대학교 김항건 교수(약학대학 약학과)

순천대 김항건 약대 교수.
순천대 김항건 약대 교수.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환대’와 ‘박해’의 역설이다.

주인공 오디세우스에게 현실 안주의 달콤한 늪이었던 과도한 환대는 영웅의 나태를 낳았고, 반대로 목숨을 위협하는 박해와 멸시는 그를 일깨워 칼을 갈게 만든 각성제가 되었다.

최근 전남 지역의 최대 염원인 ‘국립 의과대학 유치 후보 대학’ 공모 과정과 그 이후의 진통을 지켜보며, 필자는 오디세우스가 겪은 이 환대와 박해의 변증법적 여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전라남도의 유·무형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대라는 ‘환대’ 속에 있었던 곳은 목포대학교다.

목포대는 오랜 시간 도정의 따뜻한 비호 속에서 서남권 의료 취약지 구제를 위한 의대 유치의 당위성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안락한 환대의 울타리는 때로 치열한 대외 경쟁 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스스로를 혁신해야 할 절박함을 무디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반면 순천대학교가 마주했던 환경은 상대적인 소외와 차별이라는 ‘박해’의 연속이었다.

전남도가 오랜 기간 목포대에 힘을 실을 때, 동부권의 순천대는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서러움을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낮은 자세로 온갖 모욕을 견디며 때를 기다렸듯, 순천대는 그 결핍과 박해의 시간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계기로 삼았다.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체질을 개선한 끝에 ‘글로컬대학 지정’을 비롯한 객관적인 평가 지표와 대학 역량을 증명해 냈고, 마침내 이번 의대 추천 대학 선정이라는 결과를 끌어냈다.

그러나 이번 공모 결과는 결코 한 대학의 일방적인 승리나 독식으로 재단되어서는 안 된다.

30여 년간 전남 의대 유치의 불씨를 지피고 서남권 도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목포대의 눈물겨운 노력과 역사적 정통성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오랜 숙원이 좌절된 서남권 도민들의 아쉬움과 반발은 당연한 통증이다. 다만, 이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상처를 추스르고 자중(自重)하며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줄 때다.

소모적인 갈등의 장기화는 오랜 숙원이었던 전남 전체의 의대 신설 기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진 소외를 견뎌내고 뜻을 이룬 순천대학교 앞에는 승리의 기쁨보다 더 무거운 ‘통합의 책임’이 놓여 있다.

이번 성과는 순천대만의 영웅적 승리가 아니라, 전남도민 전체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여된 엄중한 책무다.

순천대는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서남권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소외감을 깊이 공감하고 포용하는 넓은 시야를 보여주어야 한다.

동부와 서부권을 가르지 않고, 전남 전역의 도민들이 양질의 의료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는 유기적인 교육·의료 인프라를 짜임새 있게 완성해 나가야만 향후 정부의 최종 승인이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괴물들을 처단하는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오랜 갈등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침내 평화로운 왕국을 재건할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지나친 환대에서 걸어 나와 스스로 자립하는 법을 깨달은 목포대와, 박해 끝에 스스로의 경쟁력을 증명해 낸 순천대는 이제 ‘전남도민의 생명권 보장’이라는 하나의 큰길에서 만나야 한다.

양 대학이 갈등을 넘어 연대할 때, 30년 넘게 이어온 전남도민의 염원은 비로소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parkd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