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상시화 추진에도 신규자금 공급 난항 지속
P플랜·ARS·프리ARS 제도 있어도 법원 중심 한계
日, 법원 밖 구조조정제도 운용…플랫폼 다변화 절실
‘정책자금 마중물’ 민간자본 유입 위험보상장치 필요
한계기업이 늘어나면서 기업회생 신청 건수도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런데 정작 법원 문턱을 밟기 전, 기업가치가 남아있는 단계에서 이해관계자들이 구조조정 테이블에 앉는 경우는 드물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망가진 뒤 법원에서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무너지기 전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국내 기업 구조조정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생 전 구조조정 ‘구멍’…워크아웃 실효성 논란도=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7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상시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보고했다. 기촉법은 부실기업의 신속한 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한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다. 2001년 한시법 형태로 도입된 이후 일몰과 재입법을 반복해왔고, 현행 기촉법은 12월 존속기한이 만료될 예정이다.
워크아웃은 기업이 법원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전 채권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 제도다. 기업이 개시를 신청하면 금융채권자들이 정상화 가능성을 따져 절차 개시 여부를 정한다. 법원 관리를 받는 회생절차와 달리 주요 금융채권자가 직접 구조조정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자금 지원과 채무조정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 시장에서는 워크아웃이 본래 취지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기업은 재무·경영 상태가 악화돼도 워크아웃 신청을 주저하고, 금융기관 역시 신규 자금 투입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금융채권자의 역할이 적극적인 구조조정보다 기존 여신의 회수와 손실 최소화에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워크아웃의 핵심인 ‘신규자금’ 공급 기능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과거에는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금융기관이 자금 투입과 사업 재편에 앞장섰다. 하지만 금융기관 건전성이 중시되는 지금은 구조조정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채권자가 오히려 부담을 더 떠안을 수 있다는 게 금융권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급된 신규여신을 정상여신으로 인정해줬지만 지금은 ‘부실여신’으로 분류된다”며 “기업과 금융회사 등 이해관계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다. 기촉법 적용 대상은 신용공여액 합계 50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확대됐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금융기관이 구조조정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결국 기업들이 적절한 시기에 구조조정을 시작하지 못하고 부실이 심각해진 단계에서야 회생을 신청하면서, 기업회생 성공률도 함께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P플랜·ARS 있지만 법원 중심…“선택지 더 늘려야”=전문가들은 ‘법원 밖’ 기업 구조조정 절차가 세밀화해야 회생 성공률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회생절차는 법원의 강제력을 빌려 채무조정을 관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개시 신청 자체가 시장에 부실 신호로 읽혀 거래처 이탈과 신뢰 하락을 부른다. 게다가 절차가 길어질수록 남은 기업가치는 그만큼 깎여나간다. 법원 밖에서 미리 구조조정을 매듭지을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져야 하는 이유다.
국내에도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P플랜(P-Plan·사전회생계획안제도)이 있다. 기업과 주요 채권자가 회생신청 전 사전 협의를 거쳐 회생계획안을 준비하고, 이후 법원이 이를 토대로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회생제도의 법적 강제력과 사적 구조조정의 신속성을 결합하려는 취지다.
기업이 회생을 신청한 뒤 법원이 개시결정을 일정 기간 보류하고 채권자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협의하도록 하는 자율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ARS)도 있다. 회생신청 전 단계에서 법원 조정 절차를 활용하는 ‘프리ARS’도 구조조정 수단으로 거론된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ARS 신청 건수는 2022년 3건, 2023년 7건, 2024년 18건으로 매년 늘었고, 2025년 도입된 프리ARS 역시 시행 첫 해부터 두 자릿수에 근접하는 9건의 신청이 몰렸다. 본격적인 회생절차 바깥에 있는 조정 제도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 제도 역시 법원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이 회생을 검토하거나 신청할 정도로 부실이 커지기 전, 상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독립적인 구조조정 플랫폼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일본은 법원 밖에서 다양한 구조조정 제도를 운영하는데, 특히 사업재생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대체적 분쟁해결)이 활발하다. 가장 큰 특징은 법원이 아닌 ‘사업재생실무가협회(JATP)’가 기업과 채권 금융기관을 중재해 구조조정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JATP는 변호사, 회계사, 컨설팅사 등 기업구조조정 실무자들이 모인 민간 네트워크다.
최근에는 ‘조기사업재생법’ 시행도 앞두고 있다. 기존 사업재생 ADR은 금융채권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조기사업재생법에 따른 절차는 채권자 다수결에 의한 동의를 거쳐 법원의 인가를 받으면 구조조정안을 실행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법원이 아닌 제3자 기관이 구조조정을 주도하되, 일부 채권자의 반대로 절차가 지연되는 것을 막을 법적 장치를 추가한 형태다.
중소기업을 위한 별도의 구조조정 통로도 마련돼 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설치된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가 대표적이다. 2022년 기존 중소기업재생지원협의회와 경영개선지원센터를 통합해 출범한 지역 중소기업 특화 구조조정 기관이다. 경영상 문제가 시작된 단계에서부터 협의회의 상담을 받을 수 있고, 협의회가 사업성과 재생가능성을 검토해 주요 채권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채무조정과 사업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기업 상황에 따라 수익성 개선, 예비회생, 본격적인 사업재생 등 지원 강도도 달리한다.
일본에는 ‘대기업·중견기업엔 사업재생 ADR, 중소기업엔 지역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라는 복수의 구조조정 통로가 갖춰진 셈이다.
▶은행이 돈 안 대면 민간자본으로…“구조조정도 투자시장 만들어야”=법원 밖 구조조정 절차를 다양화하더라도, 정상화에 필요한 ‘돈’을 누가 댈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전문가들은 기존 채권 금융기관의 신규자금 공급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면, 사모펀드(PEF)와 전략적 투자자(SI) 등 민간자본을 구조조정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정상적인 자금조달 시장에서 자본을 구하기 어려울 때, 위험을 감수하고 자금을 넣어 높은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별도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미국의 서버러스캐피탈, KPS캐피탈, 오크트리캐피탈 등이 구조조정·특수상황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투자하우스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운영인력을 투입, 정상화하거나 부실채권·구조조정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출발해 글로벌 대체투자 시장을 대표하는 대형 운용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국내 구조조정 전문 투자시장은 정체돼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기관전용PEF는 2019년 말 721개에서 지난해 말 1195개로 약 66%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기업재무안정PEF는 63개에서 62개로 오히려 한 곳 줄었다.
기업재무안정PEF는 자본시장법에 별도 근거를 둔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다. 워크아웃·회생 신청 기업뿐 아니라 동종 업계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 등 보다 넓은 범위의 ‘부실징후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구조조정 투자의 위험과 특성을 반영한 지원 체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 투자 경험이 풍부한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높은 리스크를 부담하는 만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투자구조가 확보돼야 시장에 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자금을 활용한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구조혁신펀드는 정부재정과 정책금융기관이 모(母)펀드를 조성하면 운용사(GP)가 민간자금을 매칭해 자(子)펀드를 조성·운용하는 정책 펀드다. 2018년 출범 이후 1~3호 펀드는 한국성장금융이 운용했고, 2023년부터는 운용주체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 바뀌었다.
핵심은 정책자금의 ‘위험감수’다. 현재 기업구조혁신펀드는 후순위 보강과 금융회사의 위험가중자산(RWA) 부담 완화 등을 통해 민간 출자를 유도하고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구조조정 투자를 꺼리는 민간 출자자(LP)가 적지 않고, 상당수가 정책자금의 후순위 출자라는 안전장치를 보고 투자한다”며 “후순위 구조를 강화하고 기업재무안정PEF에 세제 혜택 등 제도상 인센티브를 더 주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책펀드 운용 방식을 ‘성과 중심’으로 재편하고,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구조조정 투자는 운용사의 전문성이 실적을 좌우하는 만큼, 투자 집행과 정상화 역량이 검증된 GP에 더 많은 정책자금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 정통한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구조조정 투자는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 본질이라 포트폴리오 기업마다 수익률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출자자들이 안정적인 성과를 요구하면 GP들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구조혁신펀드를 받고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곳은 걸러내고, 과감하게 투자해 성과를 낸 GP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예컨대 1000억원씩 열 곳에 나눠줄 게 아니라 잘하는 곳에 3000억원을 몰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투자는 대상기업 발굴에서 시작해 채무조정, 추가 자금투입, 사업재편, 신용회복을 거쳐 매각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기간 안에 자금을 소진하고 회수해야 하는 일반적인 펀드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면, 구조조정 기업을 충분히 정상화하기도 전에 매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타이밍’이다. 기업이 무너지기 전 이해관계자들이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법원 밖 제도를 다양화하고, 위험을 감수할 민간자본이 그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인을 만드는 것. 국내 기업 구조조정이 ‘사후 처리’에서 ‘사전 대응’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한 다음 과제다.
박지영·노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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