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은행 정기예금 991조 돌파
주식 불붙기 직전인 작년 6월말 대비 60조원↑
조정장 장기화에 피로감 느낀 개인투자자 유입
기업들도 결제 대금 운용 차원서 무위험 상품 수요
[헤럴드경제=서상혁·박혜림 기자] 주식시장 조정이 계속되면서 은행에서 빠져나갔던 돈이 다시 돌아오는 ‘역머니무브’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까지 적극적으로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있는데, 예금 잔액은 주가가 치솟기 직전인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보다도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6일 기준 정기예금(개인+중소기업+대기업) 잔액은 991조4441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연말 939조2863억원이었던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은 2월 946조8897억원 늘어난 이후 3월 937조4565억원, 4월 937조1834억원으로 줄었다.
연초 대비 감소 추이를 보인 데에는 주식시장 영향이 컸다. 3월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주가가 급락했지만 종전 협상 소식에 주가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돌면서 개인을 중심으로 머니무브가 나타났다.
기업 정기예금은 연말 500조4094억원에서 4월말 501조8875억원으로 1조4000억원가량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개인 정기예금은 438조8769억원에서 435조2959억원으로 3조50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예금 잔액이 본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건 6월부터다. 6월말 정기예금 잔액은 949조3998억원, 7월말에는 984조9399억원으로 한달 만에 무려 35조원 가까이 늘었다. 6일 기준(991조4441억원)으로는 주가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전인 지난 해 6월말 잔액(931조9343억원) 대비 6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중동 사태 장기화에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긴축을 시사하면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게 주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코스피는 6월 19일 9331.55로 전고점을 기록한 후 등락을 거듭하며 지난 달 29일에는 5663.24까지 떨어졌다. 지난 7일에는 6258.77로 올랐다. 개인 정기예금은 6월말 425조1943억원에서 7월말 429조4686억원, 지난 6일에는 430조375억원으로 반등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6일 기준 104조712억원으로 정점이었던 6월 4일 기준 139조6948억원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25.5%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8월 들어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나고는 있지만, 변동성이 큰 장이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다시 은행으로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머니부브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들이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실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대표 상품(1년 만기)의 최고금리는 연 3.20%~3.30% 수준으로 7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직전 2% 후반대와 비교해 소폭 올랐다. 주식시장 조정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무위험 상품인 정기예금으로 다시 몰리는 ‘역머니무브’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정기예금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5월말 509조5869억원에서 6월말 524조2056억원, 7월말 555억4713억원, 지난 6일에는 561조4066억원으로 늘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여윳돈을 무위험 금융상품인 정기예금에 적극적으로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은 통상 환 헤지를 위한 외환 상품이나 채권, 정기예금에 여윳돈을 분산하는데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리스크는 없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정기예금에 수요가 더 몰리는 분위기”라며 “특히 8월은 내년도 결제 대금을 미리 준비하는 시기이다 보니 절대로 손실을 내서는 안 되는 돈들을 은행에 맡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기예금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은행 입장에선 보다 값싸게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은행들은 예금이나 은행채 발행을 통해 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정기예금 등 자체 수신을 통해 끌어오는 편이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잖아도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따라 은행들은 기업 대출을 큰 폭 늘려야만 하는 지상 과제를 안고 있다.
반면 대출 차주에게는 썩 좋은 소식이 아니다. 수신 비용이 늘어나면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인 코픽스 역시 상승하기 때문이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코픽스까지 상승하면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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