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溫記): 따스함을 기록하다]

7년 전 남편 떠나보낸 조미나 씨

뇌사 상태의 남편, 가족들 장기기증 큰 결심

“5명 살린 우리아빠” 아들딸의 아빠 기억법

아내 몰래 후원계좌들 “좋은 사람이었구나”

조미나씨가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남편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윤창빈 기자
조미나씨가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남편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아무런 대비가 안 됐던 이별이, 7년이 지났는데도 울컥하네요. 아이들에게 ‘아빠가 마지막까지 좋은 일을 하고 갔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조미나(52) 씨의 남편 김종혁 씨는 2019년 1월 11일 뇌출혈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겨우 50세였던 남편. 벼락같은 생긴 일이었다. 조씨와 가족들은 열흘간의 고민 끝에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김씨의 폐와 간, 좌우 신장 등은 5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이 ‘마지막 모습’은 어린 딸과 아들이 아빠를 기억하는 방식이 됐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아빠가 뭐 하시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딸아이가 ‘우리 아빠는 다섯 명을 살리고 하늘나라에 갔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배웅까지 했던 남편, 몇 시간 뒤 걸려 온 전화

남편의 마지막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2019년 1월 11일 금요일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회사 워크숍 참석차 일본으로 떠나는 조미나 씨를 남편 김종혁 씨가 공항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줬다. 버스 도착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부부는 근처 커피숍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며칠 전부터 이어졌던 남편의 두통이 마음에 밟혔다. 아내는 남편에게 “계속 머리가 아프면 큰 병원에 가보자”고 말했다. 살아있는 남편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될지 몰랐다.

아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갑자기 쓰러졌다. 다행히 집에는 큰아이를 가르치던 대학생 과외교사가 있었다. ‘쿵’ 하는 소리를 듣고 나온 교사가 쓰러진 김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꿈에도 이 사실을 몰랐던 조씨는 일본에 도착해 휴대전화를 다시 켰더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쌓여 있었다. 불안감이 번졌다. 황급히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자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누나 매형이 쓰러졌어. 지금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조씨는 짐도 찾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부터 구했다.

그날 저녁 병원에 도착했을 때 중환자실 밖에는 양가 가족과 남편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의사는 지주막하출혈이라고 진단하며 뇌사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불과 그날 아침까지 아내를 배웅하고 커피를 함께 마셨던 사람이었다. 가족은 김씨의 검사 자료를 들고 서울 시내 여러 대학병원을 찾아다녔다. 혹시 다른 의사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가족이 기다리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미나 씨의 남편 김종혁 씨가 생존해 있을 때 자녀들과 함께 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조미나씨 제공]
조미나 씨의 남편 김종혁 씨가 생존해 있을 때 자녀들과 함께 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조미나씨 제공]

남편 덕에 다른 가정에 행복이 이어진다면

남편의 회복이 어렵다는 현실 앞에 병원은 가족에게 장기기증이라는 선택지를 소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기의 상태가 나빠져 기증할 수 있는 장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뇌사 판정을 거쳐 장기기증 수술이 이뤄지는 날은 곧 남편을 떠나보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조씨에게는 그날을 가족이 직접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남편이 죽는 날을 제가 결정하는 것 같았어요.”

먼저 결심한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평소 교회를 다니시며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왔던 시어머니가 “이런 상황이라면 장기기증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쓰러지고 열흘이 지난 1월 22일 김씨는 5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그중 한 명은 비슷한 연배의 50대 가장이었다.

조미나 씨는 “우리와 비슷한 가정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슬픈 일이었지만 남편 덕분에 다른 한 가정에는 행복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조씨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을 하나둘 발견했다. 장례식장에는 어린 시절 친구부터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지인까지 많은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유품을 정리하다가는 가족도 몰랐던 후원 계좌 3개가 나왔다. 남편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꾸준히 누군가를 돕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정말 많은 분이 와주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 역시 참 좋은 사람이었구나’ 싶었어요. 친구들도 하나같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보고 싶으면 그리워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요”

아빠의 죽음 이후 7년, 초등학생이던 큰아들은 성인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아버지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노심초사한 일가친척들이 모두 찾아왔다.

네 살 터울인 남매는 유난히 돈독하게 자랐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일찍부터 가졌고, 동생도 그런 오빠를 존중했다. 그래서인지 커가며 남매가 크게 다투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조씨는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찍은 가족사진을 넘겨봤다. 그는 사진 속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작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며 미소를 보였다.

조미나씨가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내 뇌사 장기기증 기념공간에 있는 ‘나누고 더하는 사랑’ 조형물 앞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조미나씨가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내 뇌사 장기기증 기념공간에 있는 ‘나누고 더하는 사랑’ 조형물 앞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그는 “바쁘게 살아온 우리 부부의 삶에 의미를 더해준 아이들이 이렇게 컸다”며 “남편에게 늘 ‘나는 아이들 옆에 있을 테니 당신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넘어지지 않게 곁에서 지켜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있는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에서 열린 생명나눔 행사에서 가족을 떠나보낸 지 10~20년이 된 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움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조씨는 ‘애도의 시간’의 가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보고 싶은 순간에는 그리워하고, 울고 싶은 날에는 울어도 된다는 위로도 얻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내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 지금도 그의 주민등록증 뒷면에는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장기와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남겼다.

“황망하게 남편을 떠나보냈지만 일을 겪으며 알게 됐어요. 누군가를 떠나보내면서도 한 사람의 끝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란 선물이 될 수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