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마이크론 의존 낮춰 공급망 다변화 시도
팀 쿡 애플 CEO “메모리값 100년 만의 홍수”
AP 생산 병목도 현실화…TSMC 물량 확보 한계
<편집자주>
‘칩칩팹팹(Chip Chip Fab Fab)’은 AI 시대를 움직이는 반도체 산업을 쉽고 깊이 있게 풀어내는 연재입니다. AI 혁명의 핵심인 ‘칩(Chip)’과 이를 만드는 ‘팹(Fab)’을 잇는 이름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처럼 반도체 산업의 쉼 없는 진보를 담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기술은 쉽게, 뉴스 이면의 이야기와 산업의 흐름은 깊이 있게 전하며, AI 시대를 이끄는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를 독자들과 함께 읽어갑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메모리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100년에 한 번 올 법한 홍수’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팀 쿡 애플 CEO)
“메모리 불황기였던 2023년 고객사들이 가격을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메모리) 기업들은 손실을 보면서 투자할 여력이 없어졌고, 이는 업계의 투자 역량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
안녕하세요. 칩칩팹팹, 오늘은 애플의 굴욕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메모리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절대적 ‘갑(甲)’일 줄 알았던 애플도 천정부지로 솟은 메모리 값 앞에서는 ‘을(乙)’에 불과한 모습입니다.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이 수요기업에서 공급기업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애플은 2026회계연도 3분기(4~6월) 컨퍼런스콜을 열었습니다. 팀 쿡 CEO의 마지막 컨퍼런스 콜이기도 했는데요. 매출 1094억2000만달러(한화 157조4927억원), 주당순이익(EPS) 2.02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습니다. 시장 컨센서스인 매출 1086억5000만달러, EPS 1.89달러는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였죠.
하지만 주가는 3% 하락했습니다. 시장은 반도체 가격 상승이 불러온 충격파가 애플을 덮쳤다고 본 건데요. 팀 쿡 CEO도 적극적으로 메모리 탓을 했습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향후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까지 발언 수위를 올린거죠. 쿡 CEO는 “2026회계연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11% 증가할 것”이라며 컨센서스인 12.1%에 못 미치는 수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00년에 한 번 올 법한 홍수’처럼, 칩플레이션이라는 자연재해를 맞았다는 거죠.
이 얘기는 지난 6월로 거슬러 갑니다. 애플은 최근 아이패드와 맥북 등 주요 제품 가격을 15~20% 인상했습니다. 맥북 프로는 1699달러에서 1999달러로 300달러(약 17.7%) 올랐구요. 중저가 제품인 맥북 네오도 출시 3개월만에 699달러로 100달러(16.7%) 인상됐습니다.
쿡 CEO는 메모리 가격 급등이 제품 가격 인상의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쿡 CEO는 “마지못해 가격을 올렸다”며 “메모리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100년에 한 번 올 법한 홍수’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적극적으로 메모리 탓을 했습니다.
문제는 메모리 가격 인상이 애플의 수익률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애플의 매출총이익률은 지난 3월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데요. 애플은 이 같은 수익성 악화의 주요 배경으로도 메모리 가격 상승을 지목했습니다.
쿡 CEO는 “지난 실적발표 때 말했듯 3월 분기에는 12월 분기보다 메모리를 더 비싸게 구매했다. 6월 분기에는 3월 분기보다 메모리 구매비용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며 메모리 가격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죠.
그러면서 “기존에 이월된 재고의 효과가 (6월 분기에는) 이를 일부 상쇄했지만 9월 분기 이후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월 재고 효과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9월 분기 이후 메모리 시장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사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수익성을 압박하자 애플은 중국 메모리 업체를 공급망에 포함하기 위한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애플은 쿡 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을 중심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을 직접 만나 중국산 메모리 도입 필요성을 직접 설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애플은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메모리를 미국 이외 지역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탑재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쏠린 메모리 조달처를 중국 업체까지 넓히면, 공급 부족에 대응하면서도 전자제품 가격 인상도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은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도입이 중국 반도체의 글로벌 시장 확산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공화당 소속 존 물레나 미 하원 중국특별위원장과 조지 화이트사이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러트닉 장관에게 미국 기업의 CXMT·YMTC 제품 구매를 금지해달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지난 29일에는 상원도 움직였습니다. 짐 뱅크스 공화당 상원의원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 등은 쿡 CEO에게 “8월 21일까지 CXMT나 YMTC의 메모리를 애플 제품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중국산 메모리 도입을 둘러싼 초당적 반대가 이어지는 모습이죠.
미국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산제이 메흐트라 마이크론 CEO는 지난 6월 메모리 가격 급등의 책임을 메모리 기업에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메모리 불황기였던 2023년 고객사들이 가격을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며 “기업들이 손실을 봤고 업계의 투자 역량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며 사실상 애플을 저격한거죠.
트럼프 행정부에는 CXMT 등 중국 기업이 미국 기술기업에 메모리를 공급하도록 허용할 경우, 과거 중국과의 경쟁으로 미국 철강·제조업이 쇠퇴한 것처럼 자국 메모리 산업도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중국산 메모리 도입 반대 로비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권과 업계의 반발에도 쿡 CEO는 이날 공급망 확대 가능성을 재차 언급했습니다.
쿡 CEO는 “D램 시장에는 기본적으로 공급업체가 세 곳밖에 없다. 공급업체가 더 많아진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라며 “가격 측면에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CXMT는 애플과 공급 협상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애플은 가격보다 공급망 확충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메모리 공급처를 늘려 공급망 위험을 낮추겠다는 의미인거죠.
애플은 메모리 뿐 아니라 파운드리 병목도 주요 공급 제약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TSMC가 생산하는 애플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현재 ‘가장 큰 공급 제약’ 품목이라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공급 문제가 아닌, 수요 예측의 문제”라며 애플의 수요 예측 실패에 따른 문제로 규정했습니다.
쿡 CEO는 “공급망의 유연성이 평소보다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며 “물량을 앞당겨 확보해 왔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그렇게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TSMC의 최선단 공정인 2나노 공정은 수요가 급증해 2028년까지 예약 물량이 꽉 찬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생산 라인을 확장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한참 모자란 상황입니다.
다만 쿡 CEO는 TSMC 외에 인텔을 추가 파운드리 공급사로 활용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파트너나 공급업체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습니다. 이어 “아이폰과 맥의 강한 교체 수요로 실제 수요가 당초 예상을 넘어선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파운드리에선 어떤 타개책을 고안할지 주목되네요.
go@heraldcorp.com


